[문학] '나는 오래 전에 길을 떠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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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래 전에 길을 떠났다/류근조 지음, 새미, 5천5백원

1966년 '문학춘추'로 등단한 중진 시인 류근조(중앙대 교수)씨가 그동안 써온 국내외 여행시 56편을 모은 시선집. 여행지의 풍광과 소회를 읊은 여느 여행시와 달리 시공을 훌쩍 뛰어넘는 마음의 밑자락를 고향과도 같이 펼쳐보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四月은 허전해/내 작은 방에 촛불을 켜고 다시/밤비소리 조용해진 창가에서//언제나처럼/물기 어린 네 고운/눈매를 그려보자."('일기-내 마음의 수채화'중)

자신에게로 돌아가기 위한 끝없는 우회의 길이 여행이라는 류씨의 시들은 위 권두시 제목대로 풍광의 밑에 그려진 '내 마음의 수채화'다. 지난 삶들에 대한 추억일 수 있는 여행시편들은 다음과 같은 아름다운 구절도 낳는다.

"경주에 사는 바람은/경주에서도 이름난/무열왕릉이나 포석정 근처의/허술한 터밭에 사는 바람은/이름만 바람일 뿐이지/형체만 없을 뿐이지/아직도/우리네 마음 속 깊은 수렁에/반짝이는 빛으로 남아서/가끔은 춤도 추고 세속오계(世俗五戒) 같은 율법도/외우나니"('경주에 사는 바람'중)

이경철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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