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김찬삼 교수 제7차 세계 여행기-공동묘지의 잠자는 미녀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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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이색적인 곳을 찾아다니기 위하여 「페루」의 「리마」에서 적도의 나라 「에콰도르」의 「과야킬」가까운 곳에 이르렀을 때 「리마」교외에서 본 「주검의 아파트」보다 더 희한한 공동묘지를 발견했다.
이런 묘지는 세계적인 관광자원임에 틀림없으나 남미 여러 나라가 그렇듯이 거의 소개하지 않아 여기 저기 쏘다녀야 발견되는 법이다.
저 「메테롤링크」의 『파랑새』에 그려진 것처럼 「치르치르」와 「메치르」남매가 행복의 상징인 파랑새를 붙들기 의하여 미래의 나라까지를 헤매듯이 필자는 명계라 할 세계의 묘지를 많이 찾아다녀서 사신이나 된 듯한 착각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과야킬」에 가까운 묘지에선 또 하나의 죽음의 철학을 깨달았다.
이 묘지는 「리마」의 것과 비슷한 것도 없지 않으나 꼭 일반 주택의 형태로 2, 3층을 지어 층마다 몇십구의 유해가 들어가도록 마련한 것도 있는데 이 유해들이 집을 드나들지 못하지만 꼭 사람이 사는 집과도 같았다. 아마도 그 유해의 유가족들은 어버이나 남편 아내가 죽어서도 좀더 실감 있게 살게 하기 위하여 이런데 모시는 지도 모른다.
여러 가지 형태의 묘지들을 두루 살피고 있는데 「아파트」처럼 지은 묘지 뜰에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다운 여인상이 눈에 띄었다. 가까이 가보니 필시 「이탈리아」산인 듯한 젖빛 대리석으로 사람의 실제 크기대로 만든 것인데 옆으로 누워서 다소곳이 잠자는 백인 여성의 모습이다. 잠자는 미녀로 표현된 저 「미켈란젤로」의 조각 『밤』보다 더 기막힌 조형미라고 느꼈다. 이런 묘지 뜰에 있기 때문에 더욱 아름답게 보였는지 모르나 어쨌든 조각 솜씨가 매우 뛰어났다.
자세히 살펴보니 이 여인상 조각 밑에 7년전 꽃다운 31세의 나이로 인생을 하직했다는 글이 아로새겨져 있었다. 알고 보니 이 여인상 밑에는 그녀의 유해가 묻혀 있으며 이 조각은 바로 그녀가 살았을 때의 모습을 실물대로 조각한 것이었다.
필자는 자기도 모르게 이 여인상의 온몸을 어루만졌는데 값진 대리석이어서 실제 인간의 살갗보다 더 부드러워 보이며 적도의 햇볕을 알맞게 받고 있어서 사람의 체온처럼 따뜻하여 흡사 살아 있는 미녀와도 같았다. 정말 이 잠자는 여인상은 「차이코프스키」의 발레 『잠자는 숲속의 미녀』 이상의 아름다운 환상을 불러 일으켰다.
『죽은 자는 영원히 젊다』란 누군가의 글이 있지만 이 여인상의 주인공인 유해는 한줌의 흙이 될지라도 이 아름다운 대리석 조각은 영원할 것이 아니가. 정적인 죽음이 동적인 삶보다 더 강렬한 감동을 주는 것은 희한했다.
「에콰도르」는 적도 직하여서 1년 내내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고 또는 「스쿨」이 퍼붓건만 이 여인상은 아랑곳없이 생전의 그 아름다운 몸매를 드러내고 있다.
이 둘레에 있는 「주검의 아파트」에 영원히 잠든 수많은 유해들이 이 아름다운 여인상을 보지 못하는 것은 그지없이 슬프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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