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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피라냐 언론」의 횡포-김영희<본사편집부국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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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미국의 언론을 빈정대는 표현의 하나로 「피라냐 언론」이라는 말이 있다.
「아마존」강의 식인어에서 유래한 「피라냐 언론」은 생사람 잡는 언론이라는 의미가 된다. 다소 과장된 데가 있기는 해도 「워터게이트」사건 이후 오만함이 극치에 이른 미국 언론의 생태를 적절히 표현한 말같이 들린다.
그런 미국의 언론이 박동선 사건을 보도할 때는 일종의 문화적인 오만까지 가미된다. 미국 언론의 「철학의 빈곤」은 본래 악명이 높지만 박동선 사건의 보도 자세는 한미 관계의 장래나 한국의 안보보다는 기자들 개인과 신문의 이해를 우선시킨다.
작년 10월 3일밤 「워싱턴」의 「쇼램·아메리카나·호텔」에서 열린 한국 대사관의 개천절 「파티」에서 「피라냐 언론」의 한국 멸시는 유감없이 과시되었다.
초청자인 김용식 대사 부부가 나란히 서서 손님을 맞아들이는 「리전시·볼룸」입구는 TV「카메라」와 취재기자들로 점령되다시피 했다.
기자들은 대사를 포위하고 틈만 있으면 몇사람을 초청했는가, 몇 사람이나 참석할 것 같은가, 지금 도착한 사람은 누구인가 같은 질문을 퍼부었다. 그 「파티」에 참석한 두 사람의 상원의원, 다섯 사람의 하원의원은 기자들의 질문 공세로 봉변에 가까운 곤욕을 치렀다.
많은 미국인 참석자들이 그 꼴을 보고 마치 「폭도들」같다고 불평을 했고, 「도널드·프레이저」하원의원의 오른팔이요, 박동선 사건 조사를 책임지고 있는 「로버트·뵈처」라는 반한 청년까지도 정도가 지나 치다고 논평을 했다.
이튿날 「워싱턴·스타」의 「조이·빌링턴」기자는 『박동선씨의 유령이 「파티」손님을 쫓았다』고 보도했지만 그 유령의 이름은 박동선씨가 아니라 「피라냐 언론」이었던 것 같다.
박동선 사건이 아니라도 미국 신문들의 한국에 대한 편견과 균형 잃은 보도는 불치에 가깝다. 75년 11월 21일 「뉴욕·타임스」의 「리처드·핼로런」기자는 서울 발신 기사에서 『미국 은행가들과 다른 외국인 은행가들은 한국의 급속히 늘어나는 외채 부담에 놀라 한국에 새로이 많은 차관을 제공하는데 점차 회의적인 태도를 취한다』고 보도한 바 있다.
11월 25일 서울의 외국 은행가 협회는 「뉴요크·타임스」사에 항의 편지를 보내고 『우리가 알기로는 「핼로런」기자가 서울에 상주하는 외국은행가는 한사람도 만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 편지는 「뉴욕·타임스」에 북괴가 5억「달러」의 외채를 기한 안에 갚지 못하고 있는 사실에 주목할 것을 촉구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미국 언론의 이런 보도 자세의 원인은 기자들 개인의 출세욕과 신문끼리의 경쟁이다. 「워터게이트」사건 때 「워싱턴·포스트」의 「번스틴」 「우드워드」두 사람은 무명의 올챙이 기자에서 일약 대기자가 되고 거부가 되었다.
「뉴욕·타임스」의 「핼로런」, 「워싱턴·포스트」의 「맥신·체셔」를 비롯한 많은 미국 기자들은 박동선 사건의 보도로 사내의 지위를 굳히고, 잘하면 「풀리처」상을 받고, 어쩌면 책을 써서 백만 단위의 치부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특히 「뉴요크·타임스」나 「워싱턴·스타」같은 신문들은 선두를 달리는 「워싱턴·포스트」를 추적하기 위해 같은 내용의 기사를 재탕, 삼탕하고 있다. 76년 11월 주미·주일 한국 특파원들이 산업 시찰을 위해 귀국을 하자 「워싱턴·스타」와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김상근 망명 대책 협의를 위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 신문들은 한국 특파원들이 서울에 있는 동안 김상근이 망명한 사실조차 알아보려고 하지 않았다.
미국 신문들의 장단에 일본 신문들이 덩달아 춤을 춘다. 「그리핀·벨」법무장관도 작년 11월 신문발행인협회의 연설에서 미국 신문들의 무책임한 박동선 사건 보도를 비난했다.
「벨」은 신문들이 70명, 90명 또는 백명의 의원들이 박동선 사건과 관련되어 있다고 보도하고 있지만 기자들은 기사를 쓰기에 앞서서 그런 정보를 흘리는 사람들의 동기를 한번쯤은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나 경쟁에 이기는 것이 최고의 선이라는 미국의 사고방식이 건재하는 한 미국 언론의 한국관이 균형을 잡기를 기대할 수는 없는 일이고, 이런 사정은 박동선 사건과 철군 문제 처리에 있어서 많은 의원들의 입장을 제한할 것이다.
특히 박동선과 한번이라도 접촉한 사실이 있다고 보도된 의원들이 철군 문제에서 한국에 유리한 발언을 삼가고 있는 것은 이런 따가운 언론의 시선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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