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농촌, 누가 지키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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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농촌의 어느 마을에 들어서도 쉽사리 사람을 만날 수 없다. 농사철이 아직 아닌데도 밭으로 나갔는지, 집안에 있는지 수십 호의 마을이 무인 가옥처럼 정적에 싸여 있다.
충북 청원군 낭성면 지산리 안근 부락도 그랬다. 37가구 중에 작년에 3가구가 도시로 떠난 이 마을도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15년간 23%감소>
그러나 이집 저집 기웃거리자 어디선가 서너명 모여들었다.
작년에 마을을 떠난 3가구는 부쳐먹을 땅이 없어 품팔이로 어려운 살림을 꾸리던 사람이든가, 자녀의 교육을 위해 땅은 소작을 주고 도시로 떠나간 경우였다.
34가구 가운데도 10가구는 연소득 1백만원 미만의 영세농이고 13가구는 품팔이가 대부분인 비농가로 이들의 이농 가능성은 아직도 높다.
주민 가운데는 아들딸을 모두 도시로 보내고 홀로 사는 김흥석 노인(64)도 있었다. 땅을 다 팔아 버리고 도시로 나간 아들은 김 노인에게 도시로 나와 함께 살자고 설득하지만 김 노인 자신은 혼자 마을에 남아 있기를 고집한다고 했다.
도시에 나가봤자 마음 맞는 친구도 없고 새로운 친구들과 어울릴 수도 없거니와, 아들이 돈을 쓰라고 쥐어 줘도 별로 쓸데도 없고, 그래서 아무 재미없는 도시보다는 이곳의 생활이 자신에겐 오히려 편하다는 것이다.
사실상 오늘의 농촌을 지키는 사람들은 바로 김 노인 같은 노인들과 부녀자들이 대부분이다.
76∼77년 한햇 동안에만도 우리 농촌 인구는 47만6천7명이, 농가 홋수는 3만1천9백50호가 줄었다.77년의 농촌 인구는 총인구의 33.8%로 좁은 땅덩이에 많은 인구가 복닥거리는 우리 처지에선 농촌 인구의 감소나 이농을 걱정하는 것이 기우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62년에 총인구의 57.1%였던 농촌 인구가 불과 15년 동안에 23.3%나 줄어들었다는 사실은 경악할 사태다.
60년대의 근대화 물결을 타고 농촌 인력이 도시로 몰리면서 이농 현상은 두드러졌다.
특히 젊은이들의 이농은 70년대의 농촌 인구 구조를 「누에고치」형으로 변모 시켰다. 노인층과 부녀자는 많고 한창 일할 청년은 적은 인구 분포다.
이는 종전의 농촌 인력을 청년에서 부녀자 중심으로 바꾸었으며 자동적으로 영농의 기계화를 재촉하고 있다.

<농번기에는 심각>
강원도 춘성군 신동면 학곡1리 주민1백2명을 나이별로 보면 남자는 40대가 17명이고 30대·50대·60대가 각각 2명씩 있을 뿐 20대의 청년은 마을에 단1명도 없었다.
나머지는 모두 부녀자들과 어린이 뿐이었다.
노동은 40대 남자들과 부녀자들이 주로 맡게 되며 모내기철이나 추수 때는 일손이 달려 쩔쩔매는 것이 예사가 되었다.
이 마을 주부 윤옥자씨(34)는 『예전 같으면 여자들이 집안 일이나 하고 기껏해야 밭매기를 했으나 요즘은 경운기 운전·퇴비내기 등 남자 일을 거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농촌의 주부들은 바야흐로 농촌 노동력의 주력이 되고 있으며 농가 살림의 대들보가 되고 있다.
충남 대덕군 진령면 학하리 2구 윤석봉씨(54)는 『갓 시집온 새색시라도 아침 일찍 일어나 저녁까지 먹을 밥을 해서는 보온 밥통에 퍼내 놓고 하루종일 밭으로 뛰어다니게 되었다』고 했다.
품삯 일손도 부녀자가 중심이다. 일손이 달린 지난해 봄·가을에 전북 완주군 구이면 지등마을에선 부녀자들로 조직된 품앗이 작업단에 한 사람 당 점심과 간식을 제공하고 1천5백원을 주었다.
또 강원도 춘성군 학곡에선 부녀자 품삯으로 2천원을 주었다. 그러나 대개의 마을에선 농번기에 날짜를 정해 놓고 한집 한집 돌아가며 품앗이 방식으로 일을 한다.
이런 현실은 농촌 노동 인구의 절대적 부족을 말하는 것이다.
77년말 현재 우리나라의 연령별 농가 인구를 보면 20∼49세까지의 남자 노동 인구는 1백97만명으로 전체 농가 인구의 16.6%에 불과했다. 특히 25세미만의 젊은 농민은 극소수.
지등마을의 황용택씨(47)는 한마디로 『25세 미만의 농부는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돈 없어 못 배운 젊은이는 공장으로 나가고 조금 배웠다 하면 모두 시의 직장을 찾아 나가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연 농촌을 지키는 사람은 40대 이상의 장년층일 밖에 없다.
젊은이들이 도시로 나가면 거의 다시 농촌으로 돌아오는 일이 없다. 더욱 교육받은 젊은이들은 도시에 정착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되었다.

<기계화가 급하다>
아직 농촌에 남아 있는 청년들이라도 기회가 있으면 농촌을 떠날 「마음의 준비」가 항상 되어 있다. 특히 도시나 읍 단위 지역에 인접해 있는 농촌은 젊은층이 있다 해도 거의 농사일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반「룸펜」이다.
차라리 젊은이들이 도시에 정착해서 농촌의 가족까지 데려갈 경우에는 남은 농민에게 경작지라도 넓혀 줄 것이지만 가족을 남겨 둔 반이농이니 농촌은 일손만 더 모자랄 수밖에 없다.
76, 77년 사이에 농촌 인구가 무려 3.72% 준데 비해 가구수는 1.6%만 줄고 있다.
지등마을의 황호영씨(41)는 『정부가 중화학공업 육성을 제1의 목표로 하는 이상 도시 중심의 시정이 불가피할 것이고 농사짓는 사람보다는 아무래도 잇점을 많이 갖는 도시 사람이 되려고 농민이 이농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주장했다.
대부분의 영세농은 품팔이를 하더라도 도시가 낫다고 하여 농촌을 떠난다. 도시의 인건비가 농촌보다는 비싸기 때문이다.
이렇게 농촌의 인구는 급격히 줄고 있다. 그래서 일손이 몹시 달린다.
그러나 일손 부속을 메울 영농 기술의 혁신과 보급은 아직 큰 진전이 없다. 여기에 우리 농촌의 고민이 있는 것이다. 【공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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