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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 키우듯…「나무 가꾸기 10년」|전남 곡성의 김병연·강명숙씨 부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산에서는 더 이상 살기 싫다』고 고달픔에 지쳐 스스로 목숨을 끊은 딸을 생각하며 나무를 자식처럼 돌보기 10년. 김병연씨(46·전남 곡성군 오산면 연화리 877)와 강명숙씨(40) 부부의 손은 이제 갈퀴처럼 거칠어지고 부르텄으나 1억여원 어치의 나무를 가꿔냈다는 보람에 흐뭇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김씨 부부가 「꿈의 동산」이라 부르는 3백75ha의 산에는 삼나무 6만2천 그루·편백 6만 그루·「리기다」소나무 3만4천 그루·밤나무 2만8천 그루 등 모두 20여만 그루의 나무들이 두 사람의 사랑을 받으며 무럭무럭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부부가 조림에 손대기 시작한 것은 68년. 남편 김씨가 고향인 전남 영광에서 교통사고로 4년간 병원신세를 지는 바람에 빈털터리가 된 뒤 한해동안 매일 점심 한끼씩을 거르면서 피 눈물나게 모은 50만원을 거머쥔 때부터였다. 연화리 산중턱에 「텐트」를 치고 가마니를 구들 삼아 살기 2년여.
남편은 남의 농장을 전전하면서 나무 재배기술을 익히는 동시에 비료값을 벌어왔고 아내의 여린 손은 흙을 파는 삽질에 부르터 손마디가 남자보다도 굵어갔다.
산림지식이 전혀 없는 김씨에게 1년간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70∼71년 처음으로 14ha에 밤나무 5천6백 그루를 심었으나 경험부족으로 모두 말라죽고 말았다. 하늘을 원망할 수만도 없는 일. 그래도 부부는 낙담하지 않았다.
72년 봄 김씨는 곡성군에 찾아가 비로소 조림기술의 협조를 얻기 시작했다.
75년 봄 부부가 산에서 일하는 사이 둘째딸 순덕양(당시 16세)이 너무나 산 일이 힘들고 공부할 수 없는 것을 비관, 음독 자살을 하고 말았다.
딸의 시체를 껴안은 김씨는 산을 버릴 마음을 가졌었다. 그러나 다소곳이 엎드린 채 김씨 부부만을 바라보는 어린 나무들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75년 가을 드디어 김씨 부부는 밤 7가마를 첫 수확했다.
김씨는 지금까지 손가락질하던 사람들에게 여봐란 듯이 밤을 돌렸다. 7년 각고의 결실이었다.
김씨는 『남들처럼 공부 못한 것을 비관해 저 세상으로 떠난 딸의 원을 풀기 위해 진학 못하는 불우한 학생들을 돕는 것이 남은 일』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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