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농촌은 이미 어제의「시골」이 아니다…전국 특별취재|의식의 변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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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시골의 장터에선「박카스」병에 설탕물을 넣어 신경통에 특효약이라느니 밀가루로 환약을 만들어 만병통치약이라고 팔아먹는 엉터리 약장수가 한두 사람씩 있었다.
그러나 요즘 어느 못된 친구가 그같은 엉터리 수작을 부렸다간 현장에서 쇠고랑을 차기에 알맞다.
소박하고 폐쇄적이던 농촌도 새마을사업과 소득증대사업으로 전반적인 생활이 향상되면서 의식면에서도 큰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 것.
『농촌에 살지만 사고는 이미 도시인』이라는 한 시골농 공무원의 말은 오늘의 농민을 가장 잘 말해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마음은 도시인>
강원도 춘성군 동면 기내2리43 이유우씨(53·여)는 아직 미혼인 두 남매가 만약 연애를 해 결혼을 하겠다면 굳이 말리지 않겠다고 말한다.
예전에 총각이 연애결혼을 하겠다면 그런 대로 용인되었지만 처녀가 같은 경우라면 집안에 무슨 변이라도 생긴 것처럼 온 집안이 법석을 떨고 집안망신이 알려질까봐 바깥일조차 시키지 않고 쉬쉬했었다.
그래도 뜻을 굽히지 않고 우물가에서 만난 총각과 결혼을 하게 된 처녀는 가족의 축복도 받지 못한 채 친정과는 한동안 교류조차 없이 외로운 결혼생활을 해야 했다.
그러나 이젠 마을에서 중매와 연애결혼이 7대3정도며 노인 등도 연애결혼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는 것이 이씨의 설명이다.
그러나 결혼을 전제하지 않은 연애나 이혼은 아직도 잘 용납되지 않고 회의가 열린 것은 유사이래 처음 이 마을에 시집온 여자들은 몇 살에 과부가 외었어도「살아 이별」의 예는 한 건도 없다.
몇 년 전 경북 의성군 어떤 마을에선 28세에 홀로 된 한 과부의 재혼문제를 놓고 마을회의가 열렸다 결론은「가」였다 .
양반 씨족이 모여 사는 전통적인 이 마을에서 과부의 재혼문제를 놓고 회의가 열린 것은 유사이래 처음 이 마을에 시집은 여자들은 몇 살에 과부가 되어도 일부종사 원칙에 따라 한평생을 홀로 살아야 했다.
자녀들에 대한 관심도 많이 달라졌다 대부분의 부모들이 자녀들의 고등교육에 대한 한 열성을 보이고 교육비를 감안해 원하는 자녀수도 크게 줄었다.
최근 고려대 의대 예방의학교실(실장 차철환 교수)이 농촌의 가임 여성을 상대로 한 조사는 원하는 자녀수가 3∼4명으로 나타났다 이는『자기가 먹을 것은 갖고 태어난다』는 생각으로 5∼9명씩의 자녀를 두었던 과거에 비하면 크게 줄어든 것이다.

<부쩍 는 딸 교육열>
강원도 홍천군 내촌면 물걸1리 이창녀씨(37·여)는『아빠와 상의해 많이 낳는 것보다는 적게 낳아 잘 기르는게 좋을 것 같아 3남매를 둔 후 만산했다』며 낳은 애들은 물론 대학까지 보내겠다고 했다.
지난해 농민들의 자녀교육열에 대한 한 조사(이화여대 이동원 교수·사회학)는 자녀를 대학이상까지 보내겠다는 의견이 경제력이 있는 집의 경우 남자는 68.2%, 여자는 49.7%, 경제력이 없는 농가는 남자 12.1%, 여자 9.2%나 되었다.
경제력이 없는 집안도 고등학교까지는 보내겠다는 사람이 남자 37.8%, 여자 29.5%로 평균 80%이상이 자녀를 최소한 고등학교까지는 보내겠다는 뜻이다.
예전 같으면 자식이 많은 집은 장남이나 머리 좋은 자식만을 도시에 보내 공부를 시키고 다른 아들이나 여자들은 농사를 도아 형제의 공부를 뒷바라지시킨 것이 흔한 일이었다.
이는 전통적인 형제의 일체의식 때문이었으나 요즘은 부모들이 형을 위한 동생의 희생을 원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자녀들도 부모들의 뜻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이지만은 않는다는 것.
전북 완주군 구이면 덕천리 이장 권이섭씨(44)는 지등마을의 경우 아직도 장자는 비중이 크긴 하지만 자녀들에 대한 교육차별은 없으며 교육으로 상속에 대신한다는 생각에서 교육열이 매우 높다고 했다.
경북의 깊은 산골 못사는 마을로 알려진 의성군 사곡면 화전부락의 경우 36농가에 젊은 대학출신이 6명이나 되며 대학재학생이 4명, 재수생4명, 고교생이 15명이나 된다.
이같은 강한 교육열로 전통적인 장자 상속풍습은 변해가고 있다. 교육을 받는 아들보다는 교육을 받 지못한 아들이게 더 많은 상속을 해주고 있으며 딸에게까지 상속해주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


농촌사람들의 이같은 의식변화는 최근 급격히 늘어난 TV수상기 보급이 큰 영향을 준 것 같다.
정부가 지난해 말 현재 조사한 농촌의 TV보급율은 2.9가구당 1대꼴. TV를 통해 농촌 사라들은 도시생활을 보고 익히며 특히 청년들은 도시 지향적이 되지만 연중 도시인의 생활 「패턴」과 사고방식을 갖게 된다 52가구중 33가구가 TV를 갖고 있고 경북 경산군 진량면 보인1동 새마을지도자 정명수씨(59)는TV가 많이 보급되면서 합리적인 사고를 갖게 늘고 특히 젊은이들의 장발이 많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경산군부군수 김상두씨(52)는 TV가 젊은이들을 도시 지향적으로 만들어 한편으로『잘 살아야겠다』는 의욕을 높이는가 하면 한편으로는 들뜨게 만들고 있다고 진단했다.
전통적 폐쇄적 사고방식이 합리적으로 변한 예는 양반의식이 강했던 충청도 지방에서 두드러진 것. (박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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