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가 사람을 보고 웃는…우시장|작품구상 위해 시골 돌아본 김주영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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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소는 웃을 줄 모른다. 그래서 엉뚱한 이야기를 하면 『소가 웃는 소리』라고 하던가. 그러나 소설가 김주영씨는 이번 봄나들이에서 소의 웃음을 보았다. 새로 구상하는 작품의 취재를 위해 1주일 동안 경북·경기일대의 장터를 돌아보고 상경한 김씨는 특히 우시장에서 치열한 삶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털어놨다.
『30년전 한동안 장터에서 살아본 일이 있는데 시장풍경이 많이 달라졌어요. 살벌하기는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지만 삶에의 투쟁의식은 더욱 치열해진 것 같았어요.』 그래서 평소에는 무심하게 들었던 소의 웃음이 사람들을 향한 웃음처럼 들리더라는 것.
이번 김씨가 들른 장터는 경북의 김천 상주 용궁 점촌 옥산 등지와 경기도의 수원 안성 김포 소사 등지. 그중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우시장으로 꼽히는 김천의 우시장이 가장 인상깊었다고 했다.
『코 안 끼운 송아지부터 늙은 소까지 팔거나 바꾸기 위해 모여든 소가 어림잡아 5백 마리 이상인데 장관이예요. 일소가 가장 인기 있는걸 보면 영농이 많이 기계화됐다지만 우리나라 농촌에서 아직도 소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 수 있는 것 같아요.』
겨우내 정성 들여 키운 송아지를 일소와 바꾸려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눈에 띄더라고. 송아지 한 마리에 20만∼30만원, 일소 한 마리에 60만∼80만원이니까 일소 한 마리를 구하려면 송아지와 저축한 돈을 함께 들고 나와야 한다는 것.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의 이해의 폭을 좁히기 위해 거간꾼들이 큰 역할을 한다.
『시골장에서 가장 변하지 않은 곳이 우시장이예요. 아니, 농촌을 통틀어 가장 변하지 않은 곳이 우시장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런데 가만히 눈여겨보니까 우시장도 변한 것이 있어요.』
옛날에는 소장수의 연령층이 50대 이상의 노년층이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40대 이하의 청·장년층이 많더라는 것. 그리고 또 있다. 옛날에는 소를 이끌고 고개 넘고 재 넘어 모여들어 첫닭 우는 새벽4시면 장이 서기 시작했으나 지금은 트럭으로 여러 마리가 함께 부려져 날이 훤히 밝아야 장이 선다는 것이다.
『우시장에 여자가 나타나면 재수가 없다해서 옛날에는 여자를 볼 수 없었지만 지금은 장꾼 가운데 간간이 여자도 섞여있다는 것도 달라진 점 가운데 하나지요.』
김씨가 장터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전라도 사람」이니 「경상도 사람」이니 하는 지방색에 혐오감을 느낀데서부터 연유한다.
그것을 작품으로 써봐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데뷔하기도 전인 10여년 전의 일.
이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연초에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고 날씨가 풀리면서 전국의 취재여행을 시작한 것이다. 이번으로 경상도쪽의 취재를 끝내고 곧 전라도쪽의 취재여행길에 오를 예정이라고 한다. 【정규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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