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변하는 독자구미 미처 못 맞춰" 미에 석간지 수난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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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빛나는 역사와 전통을 믿고 고리타분한 경영방식으로 찍어내는 신문은 독자들을 끌지 못하고, 끝내는 스스로 문을 닫게된다는 사실이 최근 미국의 언론계에서 잇달아 예증되고있다.
1백2년의 역사를 자랑하던 시카고·데일리·뉴스지(석간)가 3월초 경영난으로 자진 폐간함으로써 미국 제2의 도시 시카고의 주민들은 퇴근 후 읽을 신문이 단 1개도 없게 됐다. 한때 61만4천부를 찍어내던 이 신문은 작년 말에 고작 32만9천부를 발행, 지난 4년간의 적자누적은 2천1백70만달러에 이르러 마침내 파산하고 말았다.
비단 시카고뿐만 아니라 미국의 대도시에서 발행되고있는 석간신문들은 지난10년 사이에 거의 비슷하게 독자격감현상을 겪고 있다. 이미 롱아일랜드·프레스지, 워싱턴·데일리·뉴스지, 하트포드·타임스지, 뉴어크·이브닝·뉴스지, 시카고·투데이지 같은 이름 있는 석간지들이 차례로 죽어갔다.
대도시 석간지의 도산 사태의 원인은 여러 가지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지난 10∼20년 사이에 미국인 독자의 생활방식에 혁명적이라 할만한 변화가 있어왔으나 신문의 경영·편집·판매방식은 그 변화를 따르지 못했다는데 있다. 예전엔 일자리를 위해 대도시로 몰렸던 독자들이 이제는 도시를 벗어나 교외의 전원으로 흘러나가고 있다.
즉 대도시의 독자층이 근원적으로 엷어진 것이다. 게다가 대도시나 그 근교주민은 소득수준과 교육수준이 낮은 층으로 대체되고, 근로조건의 변화로 늦게 출근하여 늦게 퇴근하는 근로자들이 저녁신문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이 제한되고있다.
또 일반적으로 젊은이들이 신문을 읽으려 하지 않는 경향을 보이고 있으며, 교외 신흥타운에서 새로 창설된 일간지와 주간지들이 독자뿐만 아니라 광고주마저 흡수하고 있으며 도심지에서 교외까지의 신문배달이 어렵다는 것도 문제가 되고있다.
흔히 TV가 신문독자를 빼앗고 있다고 얘기하지만 광고전문가의 조사를 보면 독자를 앗아가는 범인은 TV 뉴스시간이 아니라 TV 연예프로임이 드러났다.
석간지 쪽에서는 자살에 앞서 경영상태가 좋은 경쟁지(주로 조간지)와 합병하는 고육지책까지 시도하고있다.
워싱턴·스타지가 타임지 사에 흡수된 것이라든지, 석간 신시내티·포스트지가 경쟁지 신시내티·인콰이어러지(조간)와의 공동발행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 그 예다.
또 다른 방안은 석간지의 일간잡지화다.
생생하고 자세한 사실보도, 보다 많은 사진의 사용, 소비자의 이익을 위한 생활정보 같은 것에 더 큰 비중을 둔다. 물론 지방판 같은 것을 만들어 고을 구석구석의 자질구레한 얘기까지도 들춰내 독자의 구미를 끌려하고 스포츠와 레크리에이션, 그리고 레저안내 특별부록을 만들고 있다.
그러나 시카고·데일리·뉴스지 처럼 성급하게 편집방향을 바꿨다가는 오히려 고집 센 독자들의 반발을 살 우려마저 있다.
독자 없는 신문은 총 안 가진 병사나 다름없는 것이고 보면 요즘 어른들은 왜 신문을 읽지 않을까고 한탄하기에 앞서 읽힐 수 있는 신문을 만들어 내는 수밖에 없다. 【워싱턴=김건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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