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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오늘의 교육풍토를 총 점검한다|충분한가 도의교육 평가의 문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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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우리 아들은 말다툼 한번 제대로 해본 일이 없어요. 도대체 무슨 큰 잘못을 저질렀다고 그렇게 야단을 쳐 보냅니까』.
서울 B국민학교 교무실에서 있었던 일.
교육대학을 갓 졸업한 젊은 여선생이 어느 학부모로부터 호된 항의를 받고 쩔쩔매다가 결국 눈물까지 짜내고 말았다.
이 학부모의 아들 K군(10)은 공부도 꽤 잘하고 집안도 좋은 편이었으나 학교에서는 짓궂었다. 철봉 틀에 매달린 친구의 허리를 붙들고 늘어지는 바람에 떨어져 코피를 흘리게 한 일이 있어 이날 담임선생이 K군을 벌을 세웠던 게 학부모의 분노(?)를 사게 된 것이다.
아들의 교육을 맡긴 선생님에게 『될 수 있으면 많이 꾸짖어 주십시오』라고 부탁하던 때는 옛날. 꾸지람을 들었거나 몇 대 매를 맞았다해서 학교로 달려와 항의하는 학부모들을 요즈음은 흔히 볼 수 있게 됐다.
『많은 부모들이 「우리 애만은 가장 훌륭한 모범생」이라는 착각에 빠져 있는 것 같아요』. B국교 P교사의 말이다.
그래서 성적표의 도의 성적이 어쩌다 「미」라도 맞는 날이면 이를 항의하러 학교에 찾아오는 학부모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선생님들은 도의과목평가에 항상 큰 골치를 앓고 있다.
대부분의 학교에서 「편의상」필답시험에 의해 도의과목 성적을 매기고 있다.
물론 생활기록부를 참고해서 합산하는 방법을 쓰고 있으나 이 같은 평가만으로 학생 개개인의「도덕성」을 완전히 판단할 수는 없다고 교사들은 입을 모은다. 게다가 학부모들은 물론 선생들까지도 도의 과목은 으레 성적이 좋게 나오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도의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는 통념과는 엄청난 모순을 지닌 생각들이다.
이 같은 모순을 깨뜨려 보기 위해 C중학 M교사는 언젠가 시험문제를 까다롭게 낸 일이 있었다. 수업내용 중 교과서에 실려있지 않은 부분만 골라 출제한 결과 한 반 평균 35점이 나왔다는 것. 이렇게되자 각반 담임선생들이 처음에는 항의를 하더니 나중에는 사정을 하더라고 했다.
이 같은 현상은 학생들이 그만큼 도의 선생의 강의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고 또 담임선생들은 도의 점수를 나쁘게 줄 수 없다는 통념에서 벗어나지 못한 결과라고 M교사는 풀이했다.
필답고사에 의한 평가는 전반적으로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 좋은 점수를 받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일반적으로 성적이 떨어지는 학생들은 모두「도덕성」이 전혀 결여되었다는 말인가. 지적능력이 뒤떨어져 도의 점수는 비록 나쁘게 받을지라도 품행이 단정하고 모든 행동 면에서 모범이 될만한 훌륭한 학생들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따라서 많은 교사들은 도의과목의 평가는 「행동관찰」에 중점을 둔 소위 「행동평가」를 해야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행동평가도 현실적으로 많은 문제를 지니고 있다.
『교사의 관찰은 생활의 한 단면을 보는데 불과해 결국은 「우발적인 관찰」에 지나지 않고 또 교사의 의도를 눈치챈 학생들은 선생의 의도에 맞게 행동함으로써 스스로 2중 인격을 형성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 『자료에 의한 선악(선악)의 기준으로 학생을 평가하는 것 자체가 「도덕적」인 평가행위가 되지 못한다』고 규정짓는 학자도 있다(서울대사대 이돈희 교수).
「행동평가」방법은 국민학교에서는 어느 정도 가능하나 중·고등학교에서는 불가능해진다. 중·고교에서 교사1명이 보통 7백∼8백명을 맡아 1주일에 1시간씩 대면하는 도의시간에서 성격 분석을 한다는 것은「무리」다.
목포의 D국교에서는 「1일1선」을 실천할 것을 교내방송을 통해 학생들에게 매일같이 권장하고 있다. 권장방법으로 1일1선은 동「배지」를, 한 주일 동안 제일 많이 한 학생에게는 은 「배지」를, 한달 동안 많이 한 학생에게는 금「배지」를 주며 이를 성적에 반영시키고 있다.
이 학교에서는 착한 일을 한 어린이들의 사례집까지 만들어 각반에 비치해 이를 본받도록 권장하고 있다.
그러나 착한 일을 많이 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도덕성」을 평가하는 기준을 삼는다는데 회의를 나타내는 교사들도 많다. 『도덕성의 평가는 인격을 특징짓는 신념·태도·습관·사고에 관한 것』이어서 특정한 행동 하나만으로 전체를 평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 비슷한 경우로 생활기록부에 나타난 상벌내용이 도덕과목성적에 상당한 영향을 주는데 사실은 모순이 많다는 지적이다(C여중 K교사).
생활기록부에 기재된 내용이나 상벌이 도덕성을 규정짓는 정확한 측정근거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학교마다 도의과목 평가는 여러 가지가 있다. 「가」를 평가하지 않는 국민학교가 있는가하면 담임선생의 품행평가와 필답성적을 50대50, 또는 30대70으로 채점하는 중·고교가 있고 담임의 평가대신 생활 기록부상의 성적을 가산하는 중·고교도 있다.
이 같은 현실에서 또 다른 문제로는 도의점수를 다른 과목의 점수와 합산, 평균을 내는 것이라고 D중 H교사는 지적했다. 일반학과 성적과 도의를 함께 계산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다.
「평가」를 하는 것보다는 낮은 수준의 학생들-소위 문제아들을 어떻게 정상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느냐 하는 문제가 도덕 과목의 평가에 앞서야 한다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비교육적인 것을 알면서 뚜렷한 방안이 없어 도의과목 평가는 필답시험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많은 일선교사들은 도덕과목의 평가방법에 대해 합리적인 기준이 마련될 것을 기대하고있다. <이양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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