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어디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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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계백의 시에「왕소군」의 심정을 읊은 노래가 있다.
호지무화초 춘래불사춘
호지란 흉노의 두목 선우(가 다스리는 땅을 말한다. 이들은 몽고지방에서 세력을 떨쳤던 무리. 왕소군은 절세의 미인으로 전한 원제의 궁녀였지만 호지로 출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친화책의 제물이 된 것이다.
아득한 사막지대에 봄이 온들 무슨 변화가 있을리 없다. 마음 마저 삭막한데 봄은 영영 오지 않을 듯 싶었다.
이백이 봄을 하필이면 꽤 왕소군의 심정에 비유했는지 범인의 마음으론 촌탁할 길이 없다. 겨울은 너무 길고 지리하고 어둡고 춥게 생각되었는지도 모른다. 이런 심정에선 차라리 봄은 환상으로 느껴졌을 것도 같다.
우리는 겨울을 겪을 때마다 저 언 땅에서, 저 절망적인 나뭇가지에서 봄의 싹이 솟아날 것 같지가 않다. 그러나 천시는 어김없이 계절의 변화를 알려준다.「톨스토이」의 소설 『부활』 에도 그와 비슷한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수십 만명의 사람들이 조그만 땅을 짓밟아버려도, 그 땅위에 무거운 바윗돌을 덮어놓아도, 움이 트는 풀들을 제아무리 뽑아버려도, 거기에 불을 질러도, 그렇다! 「톨스토이」는 봄은 역시 봄이라고 말한다.
소설 『부활』 은 바로 그것을 교훈하고 있다. 여주인공「카추샤」는 악의 세계를 겨울로 비유하고 있었다. 그는 무한한 사랑으로 이들을 용서하자고 외친다. 봄을「무한한 사랑」의 계절로 생각하고 있다. 부활을 믿는 것이다.
어둠과 밝음, 악과 선, 고통과 기쁨… 바로 그런 인생의 명암을「톨스토이」는 봄의 풍경에 비추어 보며 희망을 잃지 않는 것이다.
춘래불사춘. 그러나 봄은 언젠가는 오고야 만다는 너무도 당연한 진실을「톨스토이」는 거듭 확인하려고 했다.
중국의 옛 역을 보면 입춘을 그 해의 첫날로 치고 있다. 입춘을 앞둔 전야엔 재앙을 물리치는 의식까지 베풀었다. 춥고 침울한 겨울은 악의 계절로, 봄은 그 절망을 헤쳐 나오는 계절로 역마저도 뜯어고쳤었다.
우리는 그 봄을 믿으며 산다.
비록 오늘은 추운 나날이라도 내일은 봄이 있다는 것을 믿고 있으면 마음도 새롭고 용기도 샘솟는다.
입춘을 보내며 명초의 시인 고청구의 시 한귀절을 읊어본다.
봄은 어느 곳에서 오는가.
봄은 와서 어디에 있는가.
달이 지고 꽃은 말이 없는데 새들은 다정하게 속삭이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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