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선소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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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나는 어릴 때 이미 문학에 속았던 것 같다. 무서운 호랑이 이야기에 속아 이불을 적시며 울기도 하고 가엾은 거지 왕자에게 속아 밥을 굶은 적도 한 두 번이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갖은 곡예를 부리는 이야기의 마력 속에 홀렸었던 게 분명하다. 내가 문학을 공부하게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라고 하는 게 솔직한 고백일 게다.
그런데 시간의 흐름에 따라 문학의 사기성이 본색을 드러내게 되었다.
규정된 정의나 공식도 없이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려는 문학의 추상적인 비실제성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쉽고 재미있게만 느껴지던 문학이 가장난해하고 까다로운 형이상학으로 변할 줄이야 미처 예상도 못했던 일이 아닌가. 그래서 문학이 인생이라는 논리는 황당무계한 것처럼 여겨지기조차 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결코 문학을 멀리할 수 없었던 건 무엇 때문이었을까. 문학에 대한 실망 속에서 이율배반적으로 용기를 찾을 수 있었던 게 아닌지 모르겠다.
난 어려서부터 가공할 용기를 갖고 있었다. 중학에 다닐 때 벌써 원고지 일천 장의 장편소설을 써서 현상 모집에 응모한 적도 있었고 고교시절에는 무슨 책인가를 저술한다고 대학「노트」 몇 권을 소비하기도 했다.
물론 부질없는 자만심에 불과한 것이었지만 그것이 이번에도 작동했던 것 같다. 여하튼 철부지 같은 이 용기에 다소나마 위안을 준 심사위원 선생님께 감사함과 아울러 송구스러움을 금할 길 없다. 【김지원】

<약력>▲51년 충남 부여 출생 ▲부여고 졸 ▲공주사대 및 연세대대학원영문과 수료(77년) ▲목원대 강사(현) ▲「현대문학」지 평론 1회 추천 받음(7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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