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광주 … 끝난 게 아니라 얼굴을 바꿔 돌아오네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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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한강은 “소설가는 이야기꾼보다는 세상에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라고 했다. 이번 장편은 그가 우리에게 던지는 묵직한 질문이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34주년을 맞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 기념식이 ‘반쪽짜리’ 행사로 끝났다. 그때를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그날은 점점 잊혀져 간다. 그렇지만 그날은 여전히 우리와 시대가 풀어야 할 숙제다.

 “광주는 끝난 게 아니라 얼굴을 바꿔서 돌아오는 듯하다”는 소설가 한강(44)의 말대로. 그가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을 다룬 장편 『소년이 온다』(창비)를 냈다. 그에게 이 봄은 유독 아프다. 서울예대 교수인 그는 최소 일주일에 세 번, 학교가 있는 경기도 안산에 간다. 세월호 사건으로 단원고 학생과 교사 등 250여 명이 세상을 떠나면서 안산은 슬픔의 도시가 됐다.

 “ 택시를 탔는데 기사분이 며칠 전 진도에 다녀왔다고 하시더군요. 약자끼리 껴안는 모습이 광주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소설가 한승원(75)의 딸인 그는 광주에서 태어났지만 민주화운동이 일어나기 4개월 전 서울로 이사를 했다. 소설의 에필로그처럼, 그가 체험한 광주는 목소리를 낮춘 채 어른들이 주고받는 말의 어조와 어색하게 이어지던 침묵, 그들의 표정이었다.

 “간접 경험이었는데, 제게는 근원적 형태로 남았어요. 인간의 잔혹함과 야만의 시간에 대한 기억이겠죠. 그걸 해결하려면 소설로 뚫고 나가야 했고요.”

 많은 소설가에게 ‘통과의례’ 같던 광주를 그는 소설로 쓸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끝나지 않은 채 잊히고, 다른 얼굴로 반복되는 광주를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소설 속 주인공은 중학교 3학년인 소년 동호다. 합동분향소가 차려진 상무관에서 시신을 관리하고, 도청에서 마지막까지 진압군에 맞선다. 소설은 80년 5월의 그날 이후 10년, 20년, 30년이 지난 뒤 그곳에 있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나씩 끄집어낸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안은 채 망가져 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마음을 때린다.

 그는 소설을 통해 지나간 이야기가 된 34년 전 그때를 지금과 이어주고 싶다고 했다. ‘인간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찾고도 싶었다. 자료를 보고 이야기를 듣고 소설을 쓰는 시간은 고통스러웠지만 그는 역설적으로 인간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고 했다.

 “그때 죽어간 사람들은 인간의 존엄을 기억하려 했던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됐어요. 또 인간에게는 야만의 시간도 있지만 동시에 인간은 서로 껴안는 존재이며 고귀한 존재란 생각도 들었어요. 창비문학블로그에 소설을 연재할 때 조회 수는 꽤 됐는데 댓글이 거의 없더군요. 조용히 지켜보는 마음으로 부채감을 나눠가진 게 아닐까요. 세월호 사건 때 가장 많은 반응이 ‘미안하다’였듯.”

 그는 작품에서 완전히 빠져나오기 힘들다고 했다. 아마도 그건 그의 말대로 ‘인간의 생명을 맨 앞에 놓지 않는 사고방식이 만연한 야만의 시대’를 우리가 견디고 있는 탓일 터다. 이 시간을 제대로 건너가려면 그가 소설 속에서 던진 이 질문을 기억해야 할 듯하다.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이 무엇이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글=하현옥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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