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예금의 금리인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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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통화 당국은 시중부동자금을 흡수하기 위해 새해부터 가계예금의 금리를 연14.4%에서 16.6%로 올리기로 했다 한다. 방만하게 늘어난 통화에 대해 어떻게 손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뒤늦게나마 하게 된데 대해 우선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금리를 내린 것이 불과 6개월 전인 지난 7월인데 이제 다시 금리를 올리게 됐으니 그동안의 금리정책이 너무 비현실적이었다는 소리를 들어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금년 하반기중의 금리인하는 기업「코스트」절감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일리가 있는 것이나 물가상승 중의 예금자보호나 통화억제라는 점에선 현실과 너무 괴리된 점이 많았다.
금년과 같은 비정상적인 통화증발과 「인플레」 기조 속엔 금리의 저축증대 기능에 한계가 있는 것이지만, 그래도 원칙적 방향은 물가에 접근시키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물론 우리나라의 금리정책이, 교과서대로 할 수 없는 애로가 있다는 것은 충분히 짐작이 간다.
국제수지의 흑자기조와 외환누증을 해소하기 위해선 해외금융을 국내금융으로 돌려야 하는데 지금 해외금리가 워낙 낮음으로 국내금리를 현실화하기가 힘들다.
국내물가 수준에 비하면 국내금리는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지만 국제수준보다는 월등이 높으므로 자금을 쓰는 편에선 저리의 해외금융에 계속 매력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예금을 하는 입장에서 보면 금리수준이 아무래도 미흡하다. 특히 물가전망이 불투명하다는 인식이 만연되어 있는 형편에선 더욱 그렇다.
근로자의 67%가 무슨 형태든 예금통장을 갖고 있다는 최근 통계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들이 땀흘려 모은 돈을 푼푼이 저축하는 이유가 장차의 결혼 밑천, 내 집 마련 등에 있는 것이라면 부동산과 주식 값이 한해 사이에 몇10%씩 크게 오르고 실질물가 상승율이 15∼20%에 달한 형편에서 연14.4%의 가계예금 금리가 무슨 저축유인이 되겠는가.
예금금리가 오히려 물가상승률보다 낮기 때문에 예금을 하면 오히려 원금이 잠식된다는 사태가 된다.
이는 금년의 저축성예금이 부진하고 특히 하반기에 들어 이 추세가 심화되고 있다는데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돈이 가계-금융기관-기업 등으로 정상적인 「채널」에서 순환되지 않고 부동산 증권 등으로 투기화 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내년 금융정책의 큰 과제는 궤도를 일탈한 돈의 흐름을 정상화하는 것이라 하겠다.
물론 이를 위해선 안정기조의 정착이 가장 바탕이 되겠지만 금리정책의 역할도 도외시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가계예금 금리의 인상은 극히 제한된 범위 내에서 금리를 현실화하여 부동자금 흡수를 자극하자는 취지인 것 같다.
그러나 부동자금의 실질적인 동원을 위해선 금리수준이 다소 미흡하고 또 건당 3백 만원으로 되어 있는 가계예금 한도의 제약도 문제다.
가계예금이 실질적인 가계저축이라면 더 높은 금리를 인정해 주는 것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된다.
물론 높은 금리를 매기면 은행의 역금리와 수지악화라는 문제를 낳는다. 그러나 이는 이차보전 등을 통해 해결하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지금 가장 큰 문제는 이자가 얼마나 나가느냐가 아니라 통화량의 범람이라 할 수 있다. 이차보전 정도로 통화량의 감소와 순환 「채널」의 정상화, 또 이에 따른 「인플레」 진정효과를 거둘 수 있다면 매우 싼 대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요즘과 같이 통화비상 시기에 통화당국의 안목은 「코스트」나 수지보다 적정통화수준으로의 접근이라는데 가장 우선 순위를 두어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가계예금 금리의 인상효과를 주시코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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