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탄 쌀 막걸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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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오랫동안 금지돼 오던 쌀 막걸리의 제조가 허용됨에 따라 애주가들은 시판되는 새 술의 햇 맛을 보려고 벌써부터 기대가 크다.
막걸리는 말할 것도 없이 우리의 전통적인 토속주로 오랜 세월 동안 우리 민족과 밀착되어온 서민의 술이다. 특히 농민들에게는 예나 지금이나 술이라기보다 들일을 할 때 간식으로서 빼놓을 수 없는 생필품이라 할 수 있다.
술을 즐기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쌀 막걸리 시판에 한결같이 기쁨을 느끼는 것도 옛것에 대한 향수와 더불어 잃었던 고유의 풍미를 되찾게 된다는 기대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새로 시판되는 쌀 막걸리는 무엇보다 독하지 않고 시원하며, 순박한 전래의 술맛이 그대로 되살아나도록 산조·유통·판매의 전 과정을 통해 그 질의 관리에 세심한 정성을 깃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동안 시중에서 팔리고 있던 막걸리 가운데는 불결한 지하수를 사용하는데다 빛깔과 맛을 내기 위해 인체에 해로운 「카바이드」·「피크린」산 등 화학적 첨가물을 섞어서 만든 것이 적지 않았었다.
이 때문에 막걸리다운 순박한 술맛은 고사하고 마시면 자칫 두통·구토·복통을 일으키기가 일쑤였고, 심한 경우 신체상의 위해까지 입는 일도 없지 않았다. 이렇게 볼 때, 지금까지 많은 시민들은 탁주 아닌 독주를 마셔온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새로 나은 쌀 막걸리는 쌀을 원료로 빚은 술이라는 점에서 일단 『좋은 술』이 될 기본 요건은 갖추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쌀 막걸리는 밀가루 막걸리 보다 발효 기간이 긴 것이 흠이다. 또 막걸리는 장기간 보관이 불가능하다. 여름철엔 2∼3일, 겨울에도 5일이 지나면 거의가 쉬어서 못 먹게 된다.
이런 약점 때문에 발효를 촉진하고 변질을 막기 위한 첨가물이나 방부제의 사용 행위가 판칠 가능성은 더욱 크다. 그렇게 된다면 큰 기대 속에 생산되는 쌀 막걸리도 결국 종래의 이른바 「독주」와 다를 게 없지 않겠는가.
따라서 악덕 업자의 강력한 규제는 쌀 막걸리의 질과 맛의 보강을 위해서도 가장 중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요컨대 미온적인 행정 조치만으로는 효과를 거두기 못할 것임을 탄언 해도 좋다.
그런데도 당국은 쌀 막걸리 시판에 앞서 막걸리에 물을 타거나 방부제를 사용했을 때는 몰수와 함께 주류 판매 허가를 취소할 방침이라 한다.
하지만, 이렇듯 미지근한 조치를 가지고서 불량 주류의 근절을 어찌 기대할 수 있겠는가.
특히 서민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됫술을 파는 무허가 업소나 노상 간이 식품 업소 및 주점에 대해서는 면허 취소 정도의 행정 조치는 전혀 무력한 것임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들 업소의 업주들은 즉결 심판에 회부돼 5천원 미만의 벌금이나 30일 이내의 구류 처분을 받고 석방되면 금방 장소를 옮기거나 그 자리에서 다시 같은 방법으로 영업 행위를 시작한다.
이렇게 볼 때 유독 불량 주류 및 부정 식품 제조, 판매 업자에 대해서는 어떤 경우에도 행정 조치 뿐 아니라 상당한 체형에 처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마땅하다.
선진국의 경우에도 인체에 유해하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 식품이나 주류에 독성이 있는 공업용 첨가물이나 방부제품을 첨가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가장 무거운 형벌로써 다스리는 것이 통례다. 동료 시민들에게 알고서 저지르는 이런 행위란 실상 미필적 고의의 살인 행위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우리가 쌀 막걸리 시판을 계기로 다시 한번 불량 식품 업자에 대한 제도적 미비점의 보완과 처벌 강화를 거듭 촉구하는 소이도 여기에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식품 공해로부터 국민 보건을 지키고 모처럼 선을 보이는 쌀 막걸리가 순박한 한국적인 술로 정착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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