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의 경제 운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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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내년의 한국 경제를 전망함에 있어 올해 하반기의 국제 수지 동향이나 통화 금융 정세는 기존 정책 체계의 개편을 불가피하게 하고 있다. 늘어나는 외환 보유고와 그 때문에 급속히 창조되는 통화량은 국내 금융의 지나친 억제를 불가피하게 만들었으나 모든 통화 요인을 국내부문에서 상쇄시기려는 노력이 결과적으로는 도리어 금융기관 수신 규모를 감축시키는 역효과를 파생시켰을 뿐 통화량 억제에는 실질적으로 별다른 작용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 대신 중소기업 등 금융상의 한계 기업들만 심각한 자금 압박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부도율이 높아지는 모순에 직면하고 있다. 자금 사정이 그러하기 때문에 기업의 투자 성향은 위축될 대로 위축될 수밖에 없고, 대기업을 제외하면 실질적으로 투자 의욕을 갖지 못하게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염려되기도 한다.
업계의 투자 성향에 이처럼 찬물을 끼얹으면 78년에 11%의 성장률을 추구한다는 전제에 대해서 그 구체적인 추진력이 어디에서 나올 수 있겠는가 하는 물음에 직면하게 된다. 민간부문의 투자 성향이 일반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다면, 11%의 성장을 위해서 재정 투융자 규모가 얼마로 늘어나야 하겠느냐에 대해서 먼저 깊은 검토가 있어야 한다.
이미 국회에서 확정된 재정 투융자 규모를 전제로 할 때, 11%의 성장력을 재정에서 발생케 할 능력이 있겠는가는 의문이다.
국내적인 성장력에 적지 않은 의문이 있는 것이라면 결국 78년도의 성장 주도력도 수출에 기대하는 것이 아닌가 판단된다.
그러나 일본「엔」화의 평가 절상 효과가 엄청나게 급속히 나타나고 있음을 상기할 때, 대일 원자재 의존도가 큰 국내 기업의 체질로 보아 수출 원가 압력이 78년부터 구체적으로 노출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77년 중의 통화량 증가율이 연율 40% 이하로 내려갈 공산이 적은 것이라면 물가의 통화적인 요인이 78년에 이월되는 요소가 매우 크다는 사실도 충분히 고려해서 우리의 수출력을 평가할 필요가 있다.
물론 국제 경제가 예상 밖으로 78년에 호전될 자료가 있다면 해외 수요의 확대를 기대할 수도 있겠으나 지금으로서는 78년 전망이 77년 보다 호전될 것이라는 자료를 찾기는 어렵다.
미국의 무역 수지 적자폭이 크게 확대된 실정으로 보거나, 일본 「엔」화 파동의 양상으로 보거나 우리의 2대 수출 시장에 대한 78년도 전망은 오히려 어두워지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사태에 대한 평가가 그러하다면 외환 보유고 대책이라는 좁은 시야에서 78년도의 경제 운영 기조를 검토하는 것은 결코 적절하다고 하기는 힘들다.
오히려 78년의 성장 추진력을 총 점검하겠다는 차원에서 경제 동향을 재평가하는 작업이 서둘러져야 하지 않을까. 성장력에 대한 점검을 거쳐야만 비로소 국제 수지의 조정, 통화 금융 정책의 개편이라는 각 부문별 정책의 검토가 가능할 뿐 아니라 공책간의 상충성이나 조화 문제를 근본적으로 점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남 기획은 내년도에 수입 자유화 폭을 늘리고, 외자 예치제를 확대하며, 현금 차관을 금지하는 한편, 상업 차관을 줄이면서 외자 대부를 늘려나가면 국제수지 문제와 통화량 문제는 동시에 해결될 것으로 믿고, 성장률 11%·물가 상승률 10%선을 유지하는데 낙관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경제 동향의 저류에 흐르고 있는 제반 징후로 보아 성장력에 대한 점검을 주로 하고 안정 확보를 위해서 필요한 조치가 무엇이냐 하는 각도에서 정책 기조를 재검토해 주어야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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