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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블루진」과 「팝·뮤직」의 세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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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비틀즈」 모양의 더벅머리, 수염이 온통 얼굴을 덮은 「로샤·코슬로프」의 「테너·섹서폰」이 고음으로 치닫는다. 미친 듯한 박수와 발구르는 소리 속에 「마슈라드·바디」의 노래가 시작된다. 「지저스·크라이스트·슈퍼스타」중의 한 곡이다.
「코슬로프·그룹」은 젊은 「팬」들에게 우상이다. 선전하지 않아도 1년에 15∼20차례의 연주회는 언제나 입장권을 못 구한 「팬」들로 아우성이다.

<선망 대상 외래품>
「롤링스톤즈」「비틀즈」「험퍼딩크」…. 자본주의의 『퇴폐적 산물』인 「팝」 음악이 소련 젊은이들을 열광시킨다. 『악마의 껍데기』로 지탄받던 「블루진」은 박래품이면 선망의 표적이다. 어깨까지 늘어진 머리칼과 덥수룩한 수염도 신기할게 없다.
「섹스」역시 개방적이다. 공공연한 논의나 토론이 없을 뿐 서구 사회보다 성 경험을 가진 젊은이의 수는 훨씬 많다.
명문 「레닌그라드」대학의 여학생들 중 85%가 21세 전에 남자와의 관계를 가진 것으로 사회학자는 밝히고 있다. 「우크라이나」「오데사」시의 14∼17세 중·고생 중 25%도 「경험」을 가진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우리 나라에 매춘은 필요 없다. 여관방만 많으면 되니까』라는 풍자는 정곡을 찌른다.
젊은이들은 기성 세대가 쌓아 놓은 담벼락을 허물고 있다. 「팝」 문화의 유입을 저지하려던 집권자들은 소용이 없음을 알고 60년대 말부터 약간 둑을 터놓았다.
제약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젊은이의 「팝」 문화는 그들의 새로운 경향, 아버지 세대와 멀어지고 있는 경향을 보여주는 징표다. 특히 중간 계층과 체제화 된 가족의 젊은이에 두드러진 현상이다. 기사 「바딤」과 교사 「스베틀라나」는 젊은 부부다.
그들의 방에는 서구 「패션」 잡지에서 오려 붙인 「비키니」 차림의 「모델」 사진과 실내 장식 그림이 붙어 있다. 「바딤」은 두달치 봉급인 4백「루블」 (28만원)을 주고 산 모든 단파 방송 수신이 가능한 다섯자리 주파수대 「그룬디히」 (서독제) 「라디오」를 자랑한다. 「폴란드」산 「재즈」 음반을 사기 위해 그는 2시간 이상 줄을 서 기다리는 것도 지루하지 않다. 「스베틀라나」는 일본제 천으로 손수 만든 「숄」과 터질 듯 꽉 끼는 바지를 참 좋아한다.

<동구국을 거쳐서>
『우리보다는 동독이 훨씬 앞서 있어요.』
서구의 최신 유행 노래와 「댄스」를 동독 젊은이들이 더 많이 알기 때문에 부럽다는 투로 「바딤」「스베틀라나」 부부는 말한다.
소련의 「팝」 문화는 직접 서구에서 들어오는 것이 아니고 동구 국가들을 거쳐 들어온다. 동독이 첫번째고 다음이 「폴란드」「헝가리」이다.
이들의 「팝」 문화는 그러나 서구와는 다른 일면을 갖는다. 근로자의 월 평균 봉급인 1백50「루블」 (11만원)을 주고도 외국산 「블루진」 사기가 힘들어 속을 태우지만 이 바가지가 서구에서처럼 항의의 상징은 아니다. 그들의 「팝」 성향, 「블루진」·장발은 반문화의 우회적 수법이기는 하나 정치적 사회적 목적 의식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시니시즘」은 있지만 반항은 없다.
서구의 「팝」 문화가 기성 세대가 이룩한 풍요한 사회를 탈출하고 조롱하는 것이라면 이들의 「팝」 문화는 쾌적한 생활과 만족감을 지향하는 욕구의 발산이다. 비록 미국의 소리·BBC 방송에 귀를 기울이고 암시장의 「솔제니친」 작품을 돌아가며 읽어도 그들은 체제 적응적인 속성을 지닌다.
쾌적한 생활을 누리자면 우선 좋은 직장을 가져야 한다. 그러자면 공산당원이 되어야 하고 대학 졸업자면 기회는 더욱 넓어진다. 매년 5백만명의 고등학교 졸업생 중 대학 등 고등교육 기관에 들어갈 수 있는 숫자는 1백만명 뿐이다. 대학 입학 시험에 떨어지면 곧 군에 입대하지만 대학 졸업생은 예비역 장교로 느긋한 훈련만 받는다. 노동자 천국이라고 선전되고 있지만 누구나 단순 노동보다 정신 노동에 종사하고자 한다. 대학, 그것도 「모스크바」나 「레닌그라드」의 명문 대학 출신일수록 두각을 나타낼 가능성은 크다. 그래서 소련의 교육열은 어느 나라 못지 않게 높아가고 있다.
하다 못해 유치원부터 이름난 곳에 들어가려고 경쟁이 벌어진다. 고등학교 졸업반 학생과 그 부모들의 압박감은 대단하다. 입학 시험기가 되면 대학의 연줄을 찾느라고 열심이다. 「모스크바」에서는 상당한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자녀의 합격을 부탁하느라고 대학 교수들에게 거액의 뇌물을 주었다는 「스캔들」이 자주 터지곤 한다. 대학 입학은 그러나 확실한 기회를 잡은데 지나지 않는다.
「나프라블레냐」로 불리는 대학 졸업시험이 끝나면 재학중 성적·정치적 과거·가족 관계 등을 참작하여 직장이 배정된다.

<무너진 체제의 벽>
비단 대학 졸업생 뿐 아니라 거의 모든 소련 시민이 『출세』 하려면 지난 행적이 모두 검토되게 마련이다. 출세는 곧 쾌적한 생활을 보장한다. 따라서 천성적으로 보수 성향이 강한 「러시아」인은 체제 적응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서구 문물과의 빈번한 접촉은 서서히 젊은이들을 체제 속에서 끌어내고 있다. 가부장적인 질서에 젖어 있는 「러시아」 특유의 전통은 아직도 그들을 가족과 사회에 순응시키고 있으나 점진적인 변화를 재촉하고 있다.
두 자녀를 가진 「프라우다」의 한 중견 기자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젊은이들과 소원해지고 있다. 문제가 있으면 함께 의논하지 않고 혼자 해결하려든다.
우리들은 소외된다. 그들은 「이데올로기」가 하찮은 것처럼 여기고 있다. 그들은 참여의식도 없으며 의무감도 느끼지 않고 있다.』 <외신·외지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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