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고했어 캡틴 … 박지성 24년 만에 현역생활 마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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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성(33)이 축구화를 벗는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축구를 시작한 이후 24년 만이다. 한국 스포츠는 올해 ‘피겨 퀸’ 김연아(24)에 이어 또 하나의 영웅을 떠나보낸다.

 박지성은 14일 경기도 수원시 박지성축구센터(JSFC)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현역 은퇴를 공식 선언했다. 그는 “2월부터 은퇴를 생각했다. 무릎이 안 좋아 내년에도 경기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고 나아지지 않았다”고 설명하며 “후회는 없다. 그동안 받은 사랑을 어떻게 돌려드릴지 고민하며 인생을 살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박지성은 2002 한·일 월드컵 이후 10여 년 동안 한국 축구의 독보적 존재였다. 그는 단순한 축구선수가 아니었다. 국가대표팀에서는 내로라하는 스타들을 휘어잡는 ‘캡틴’이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에서 전성기를 누리던 시기에는 소소한 일상까지 초미의 관심사였다. 모든 사람이 그를 사랑했고, 신뢰했다. 무엇이 박지성을 이처럼 특별한 존재로 만들었을까.

맨유 시절 2007년 방한 당시 박지성의 사인.

 ◆신데렐라 스토리=박지성은 이른바 ‘스펙’이 좋은 편이 아니다. 축구 명문대 출신도 아니고 이동국(35·전북)이나 이천수(33·인천)처럼 어렸을 때부터 엘리트 코스를 밟지도 못했다. 수원공고 졸업 후 프로팀 수원 2군 입단 테스트를 받았다가 떨어진 적도 있다. 그의 첫 번째 자서전 『멈추지 않는 도전』에는 2000년대 초반 대표팀 발탁 초기 일화가 소개된다. 대표팀이 소집되면 기자들은 훈련을 마치고 나오는 선수를 붙잡아 인터뷰를 한다. 당연히 스타에게 몰린다. 박지성을 찾는 기자는 없었다. 그는 ‘내가 얼마나 발전하고 성장했는지 정말 말하고 싶은데 아무도 안 와 엄청 속상했다’고 책을 통해 말한다. 그런 박지성이 지금은 한국 축구선수 중 가장 인터뷰하기 힘든 존재가 됐다.

 2002 한·일 월드컵이 열리기 전에도 박지성은 홍명보나 황선홍·안정환 같은 쟁쟁한 선배에게 가려져 있었다. 최종명단 발표 직전 언론은 일제히 박지성을 ‘탈락 후보 1순위’로 언급 했다. 그러나 박지성은 그 월드컵을 자신의 무대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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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9월 이란전 때 주장 완장을 찬 박지성. 2008년 10월부터 2011년 1월까지 대표팀 주장을 맡은 그는 조용하고 당당한 리더였다. [중앙포토]

 ◆오뚝이 정신=박지성은 고비마다 오뚝이처럼 일어섰다. 벼랑 끝에서 존재가치를 과시했다. 2008년 5월,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맨유와 첼시의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결승. 8강 1, 2차전과 4강 1, 2차전에서 박지성은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 결승 하루 전까지 모든 영국 언론이 박지성의 선발을 점쳤다. 그러나 박지성은 교체명단에도 없었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결정이었다.

 그는 유니폼이 아닌 정장을 입고 관중석에서 경기를 봤다. 맨유는 정상에 올랐지만 박지성은 울었다. 그러나 좌절하지 않았다. 1년 동안 와신상담했다. 이듬해 박지성은 FC바르셀로나와 펼친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당당히 선발로 뛰었다. 나중에 박지성은 “그때는 팀을 떠나고 싶을 정도로 가슴이 찢어졌다. 그러나 내게 뭐가 모자랐는지 곰곰 생각해보니 해답이 보였다”고 말했다. 퍼거슨을 원망하기보다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고 발전의 계기로 삼은 것이다.

 부상도 박지성을 막지 못했다. 박지성은 무릎수술을 두 번 했다. 2003년 3월 오른 무릎 연골판을 제거해 3개월 만에 복귀했다. 더 큰 부상은 2007년 3월 말 찾아왔다. 그 시기 박지성은 펄펄 날았지만 무릎 이상이 밝혀져 오른 무릎에 메스를 댔다. 미국 콜로라도까지 가서 연골 재생수술을 받았다. 그는 1년 이상 걸린다는 재활을 3개월 단축해 9개월 만에 그라운드에 섰다. 결국 이 오른 무릎은 박지성이 조기에 태극마크를 반납하고 만 33세에 선수 은퇴를 하는 결정적인 이유가 됐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박지성이기에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다고 입을 모은다.

 ◆깨끗한 사생활=한국 팬들은 ‘스캔들’에 관대하지 않다. 맨유의 라이언 긱스처럼 동생의 아내, 심지어 그 동생의 장모와 불륜을 저지르고도 축구만 잘하면 문제없이 넘어가는 유럽 문화와는 다르다. 박지성은 모범적인 자기관리의 표본이었다. 유명 선수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을 만한 연예인과의 열애는 물론, 음주나 폭력 등 부정적인 사생활이 노출된 적이 없다. 출처불명의 소문은 많았지만 사실무근이었다. 평소 대중 앞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성격도 그를 스캔들로부터 지켜줬다.

 딱 한 번, 박지성이 김민지(29) 전 SBS 아나운서와 교제한다는 사실이 지난해 여름 보도됐다. 박지성은 곧바로 기자회견을 열고 사실을 인정하며 “연애든 결혼이든 제가 직접 다 말씀드릴 테니 여자친구와 가족들 인터뷰 나가는 일은 앞으로 없었으면 좋겠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7월 27일 김민지 아나운서와 서울의 W서울워커힐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린다.

윤태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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