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간 방방곡곡 돌며 『삼국사기』속의 지명확인-부산 동래구 최임백씨의 외곬 인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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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삼국사기지리지』에 등장하는 지명의 현지확인 조사에 흘러보낸 23년-.
부산시 동래구 동상2동19의41 최임백씨(46)는 억척같은 의지로 이 외곬을 걸어왔다.
최씨가 만든 색인 「카드」는 이제 1만수천장에 이르러 『삼국사기지리지』에 등장하는 지명을 모두 고증한 셈이지만 출판비가 없어 23년간 노력의 결정이 햇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최씨는 서울 모 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재학 중 지금은 별세한 고전문학의 석학인 Y교수의 강의를 듣다가 우연히 삼국시대의 지명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 『삼국유사』『계림유사』『동국여지승람』등 고전을 모두 들춰 Y교수의 지명에 대한 고증이 잘못됐음을 발견한 최씨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이 길에 들어서게 됐다는 것.
1954년부터 최씨는 경상남 북도는 물론, 충청도 전라도까지 곳곳을 두루 돌며 지명의 현지확인과 명칭이 붙은 유래를 조사했고 지명이 민간전설·무속 등과 깊은 관계가 있음을 규명해냈다.
그러나 밤낮 없이 이 길만 걸어가는 최씨에게는 만만한 일자리가 없었다.
부인 정정희씨(42)가 시장에 나가 생활을 도맡으면서 최씨의 큰일을 뒷바라지하고 용기를 북돋워 주었다.
최씨도 틈틈이 남의 원고를 정리해주고 수고료를 받았으나 생활에 큰 보탬이 되지 않고 시간만 빼앗겨 아예 잡일은 모두 집어치우고 자신의 연구에만 몰두했다.
삼국의 언어를 비교학적으로 규명하기 위해 최씨는 일의 『일본서기』 『고사기』등을 정독했고 여기다 「우랄알타이」계통의 여진어·만주어·몽고어까지 원용했다.
최씨는 고전을 아무리 대조해도 옛날 말의 뜻이 풀리지 않아 낱말 하나를 푸는데 꼬박 4·5일이 걸릴 때도 있었다고 그 어려움을 말했다.
이제 1만수천장의 「카드」정리를 끝냈으면서도 출판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데다 그동안 생활을 도맡아 오던 부인이 신병으로 누워 최씨의 연구활동은 당분간 소강상태에 빠졌다.
최씨는 요즘 삼화고무 여직공들을 위한 삼화실업 여상에 강사로 취직, 생계를 간신히 꾸러가고 있다. 『단지 몇 년이 늦어진다는 것뿐 필생의 사업이 중단 될 수야 있나요』라고 최씨는 언젠가 자신이 연구한 결정을 책으로 펴내고 연구도 계속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부산=강남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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