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있는 그림] '산타 체칠리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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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통해 음악과 미술의 상호 관계를 살펴보는'그림으로 듣는 음악'시리즈를 매주 연재한다. 음악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 그림, 음악에 영향을 주거나 받은 미술 작품을 하나씩 소개하는 자리다.

3세기께 초기 기독교의 순교자였던 성녀 체칠리아가 음악의 수호성인으로 등장한 것은 16세기의 일이다.

당시 라파엘로.루벤스 등의 여러 그림에서 체칠리아는 오르간을 손에 들고 등장한다. 심지어 그를 오르간의 발명자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의 화가.건축가인 산지오 라파엘로(1483~1520)의 그림에선 체칠리아의 오른쪽에 바울과 요한, 왼쪽에 성 아우구스티누스와 막달라 마리아가 함께 나온다.

파이프가 몇 개 빠진 이동식 오르간을 거꾸로 들고 있는 체칠리아는 하늘 위의 천사들의 합창을 황홀한 모습으로 응시하고 있다.

작곡가 프란츠 리스트는 이탈리아 여행 도중 이 그림을 보고 무척 감동을 받아 '산타 체칠리아'(1874년)라는 작품을 썼다.

바울은 체칠리아의 발 밑에 깨어진 채 흩어져 있는 플루트.비올라 다 감바.심벌즈.트라이앵글.탬버린 등의 악기를 고뇌에 찬 눈빛으로 응시한다.

여기서 바울이 악기 쪽으로 내리 찌르고 있는 칼은 '성령(聖靈)의 검'이다. 악기, 즉 덧없고 허황된 것이나 육체적 유혹에 대한 영혼의 승리, 고난과 순교의 상징이다.

오르간은 초자연적인 사랑을 가리킨다. 악기 연주를 중단하는 순간 하늘에서 천사들의 합창이 들린다. 라파엘로가 모델로 삼은 마르칸토니오 라이몬디(1475~1534)의 조각에선 하늘의 천사들도 현악기와 하프를 연주하고 있다.

산타 체칠리아는 천상의 음악(성악)과 세속적인 음악(기악)의 갈등과 대립의 중간 지점에 서 있다. 이를 극복하는 것도 그의 몫이다.

19세기 가톨릭 교회에서는 예배음악을 개혁하는 과정에서 16세기의 무반주 합창(아카펠라)으로 되돌아가자는 움직임이 있었는데 이를 '성 체칠리아 운동'이라고 명명했다.

교황 비오 10세가 르네상스 시대의 작곡가 팔레스트리나 같은 무반주 성악곡을 장려했기 때문이다. 결국 라파엘로의 그림은 르네상스 시대의 음악적 세계관의 단면도인 셈이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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