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국민 보호는 모든 나라 특권|조연현<문학평론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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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다음은 박동선 사건을 둘러싼 한-미간의 미묘한 파문에 대한 문학평론가 조연현씨의 견해와 미 의회민주당지도자들이 박동선 씨의 미국송환을 오히려 방해,『너무 많은 민주당 의원들이 희생되는 것을 막으려 했다』는 내용의 미 평론가「잭·앤더슨」씨의 기고를 요약한 것이다. <편집자 주>
인권은 만민에 평등하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은 현대사회의 상식의 하나다. 마찬가지로 국권도 만국에 평등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강자의 인권이 따로 있고, 약자의 인권이 따로 있을 수 없는 것처럼 강국의 국권과 약국의 국권이 달라질 수가 없다.

<강자·약자 인권 따로 없다>
그런데 최근 박동선 사건으로 강자의 국권과 약자의 국권이 다른 것처럼 느껴지게 하는 일면이 엿보이는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미국정부가 한국정부에 대해서 박동선 씨를 미국으로 강제 송환하라고 강요하는 것이 그것이다.
다른 모든 나라와 마찬가지로 미국 정부도 다른 나라에서 죄를 범한 사람을 다른 나라 정부의 요청에 따라 송환시킨 전례가 없다. 다른 나라에서는 죄를 범했다 해도 자국에서 잘못이 없는 자국민을 보호한다는 것은 모든 나라의 국권에 속한 일이다. 자국민을 보호하지 않는 정부가 이 세상 어디에 있겠는가. 이것은 미국만의 특권이 아니다. 모든 나라의 특권이며, 한국도 물론 그 예외일수는 없다. 그런데 그와 같은 미국이 박동선 씨를 미국으로 송환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한국의 국권을 무시하는 처사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미국의 국권만이 중요하고 한국의 국권은 중요하지 않단 말인가.

<서독선 탈옥수까지 보호>
한국이 미국의 원조를 받고 있다고 해서 미국에 대해서만은 한국의 국권을 포기하란 말인가. 더욱이 미국에서 범했다는 박씨 사건은 형사문제로서는 그 증거도 내용도 지극히 애매하고 모호하다. 정치적인 이유로 한 자연인의 인권에 손상을 주는 것은 미국의 인권정신에도 배치되는 것이 아닌가.
얼마 전「이탈리아」에서 복역중인「나치」의 전범자가 탈옥해서 서독으로 도망친 사건이 있었다. 「이탈리아」정부가 그 탈옥수를 송환해 달라고 했을 때 서독정부는 이를 거절했다.
탈옥수의 인도도 이를 거절하는 것이 자국민보호의 국제적 관례인데 아직 유·무죄 여부도 가려져 있지 않은 기소 단계에 있는 사람의 인도를 요구한다는 것은 그와 같은 요청은 일단 해볼 수 있는 일이라 할지라도 이를 거절하는 한국정부의 입장을 왈가왈부 한다는 것은 국권의 평등원칙이나 국제적 관례에 비추어 합당한 일이 아님은 너무나 명백하다.
인권이나 국권을 존중하는 미국정부가 한국정부에 대해서 이와 같은 원칙과 관례를 무시하고 박씨의 송환을 강요하는 것은 한국이 미국의 원조를 받고 있다는 한국의 약점 때문일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이것은 더욱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미국이 한국을 원조하는 것은 한국의 국권을 확립시켜 주기 위해서일 것이다. 적어도 우리는 그렇게 믿고 있다.

<원조 받는 약점 때문인가>
미국이 한국을 마음대로 주무르기 위해서 원조를 주는 것은 아닐 것이다. 미국이 한국을 원조하는 것이 미국의 이익과 관계되어 있다 할지라도 미국의 원조를 받는 우리국민의 태도는 우리의 국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 만큼 우리는 약한 나라였기 때문이며 우리가 미국에 대해서 감사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박씨 사건으로 인하여 미국에 대한 우리의 이러한 감사의 정신에 어떤 손상이라도 생긴다면 이것은 미국을 위해서나 한국을 위해서나 매우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사건에 대한 미국지도자들의 반성을 촉구해 마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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