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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외딴 수퍼에 외국인 붐비는 사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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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파키스탄 대추야자, 네팔산 렌즈콩…. 충북 음성군 대소면에는 아시아 여러 나라의 농식품 등을 파는 가게가 많다. 외국인 인구가 많아지면서 생긴 현상이다. [음성=프리랜서 김성태]

‘중국집 종업원은 중국어 필수. 수퍼마켓에선 파키스탄 대추야자에 네팔산 렌즈콩까지 판매…’.

 이런 시골 면 소재지가 있다. 충북 음성군 대소면이다. 기업들이 줄줄이 들어와 외국인 근로자들이 많아지다 보니 이렇게 됐다.

 지난 10일 오후 시외버스터미널 인근 ‘아시아 토탈 푸드마트’. 미얀마 출신 근로자 치코(30)가 양고기와 채소, 향신료 등을 주섬주섬 계산대에 올렸다. 그러곤 “사장님, 2000원만 깎아 주면 안 돼?”라며 한국말로 너스레를 떨었다. 상점 안엔 중국인들이 많이 찾는 향신료, ‘짜나주’라는 방글라데시 과자 등 온갖 아시아 물품들이 가득했다. 한쪽엔 외국인 사진 80여 장이 붙어 있다. 단골 사진이다. 가게 주인 이영수(49)씨는 “단골이 많다는 것을 내세워 손님을 끌려는 전략”이라며 “주변에 경쟁 점포들이 많아 이런 아이디어를 내게 됐다”고 말했다.

 중국 동북요리 전문식당인 미식성(美食城)에선 손님이 앉자마자 한국인 종업원이 “니 하오, 띵찬 마(안녕하세요, 주문하시겠어요)”라고 물었다. 계산까지 대부분이 중국어로 이뤄진다. 사장인 중국교포 2세 장어금(54·여)씨는 “중국인 근로자들이 많이 오기 때문에 종업원도 간단한 중국어는 구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독특한 음식을 판다는 소문이 나면서 20, 30대 한국 젊은이들도 찾아온다”고 전했다.

 대소면은 원래 한적한 시골마을이었다. 그러다 2000년대 초반 대소·대풍 지방산업단지에 기업들이 줄줄이 들어오면서 풍경이 바뀌었다. 규제에 묶여 공장을 지을 수 없는 수도권에서 멀지 않고, 중부고속도로에 바로 연결돼 교통이 편리한 이점이 작용했다. 지금은 오뚜기·풀무원 등 447개 기업이 대소면에 자리 잡았다. 그러면서 인구가 늘고 외국인 근로자까지 몰렸다. 대소면의 지난달 말 기준 인구는 1만9319명이다. 군청이 있는 음성읍(1만9240명)보다 많다. 그중 2049명(10.6%)이 외국인이다. 대략 10명 중 1명이 외국인인 셈이다. 시중은행 6곳이 들어와 있고 면 내에 병원이 17곳 등 시골답지 않게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외국인 근로자도 이곳에서의 근무와 거주를 선호한다. 외국인 근로자에게 취업을 알선해주는 전문 직업소개소도 10곳에 달한다.

 부동산은 도시형이 됐다. 가로수나 게시판에는 원룸 광고가 가득하다. 부동산 소개소를 운영하는 이중식(62)씨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처음에는 고시원에서 3~4명씩 생활하다가 돈을 벌면 원룸·투룸으로 이사한다”며 “기업들이 들어오기 시작한 초기에는 내국인이 고객이었는데 요즘은 외국인 근로자들이 주 고객”이라고 말했다. 3일과 8일에 열리는 5일장 ‘대소장’에도 아시아 음식과 생활용품을 파는 노점 20여 개가 들어선다.

 주민들의 치안 걱정을 고려해 외국인 근로자들은 지난해 4월 스스로 자율방범대도 만들었다. 이렇게 ‘국제도시’가 된 대소면은 이젠 음성군의 대표 지역으로 자리 잡았다. 기업인들의 모임인 음성상공회의소는 2년 전 아예 음성읍에서 대소면으로 옮겼다.

음성=신진호·최종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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