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믿음] 슬픔에 빠진 어머니들께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74호 27면

성경에는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지 않는다. 그 이유는 아마도 어머니의 사랑에 대해서는 특별한 언급이 필요 없기 때문이었을 듯싶다. 어머니의 사랑은 증명할 필요도 없고 설명할 필요도 없다. 모두가 알고 있는 바요, 모두가 경험한 바다.

성경에 아버지에게 주시는 말씀은 있다.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격노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 그러나 어머니에게 주시는 말씀은 딱히 없다. 하나님이 특별히 코치를 하지 않아도 어머니들은 자녀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게다.

어머니는 약하면서도 동시에 강하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모친 마리아가 그 자리에 계신 것을 보시고 제자 요한에게 모친 마리아를 부탁하셨다. 당신이 세상을 떠나시면 모친을 돌봐드릴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날부터 요한은 마리아를 집에 모셨다고 했다. 어머니는 누군가가 보호해 드려야 할 만큼 약한 존재다.

그러나 동시에 어머니는 강하다. 마리아는 당신의 아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는 장면을 끝까지 지켜보셨다. 남도 아니고 자기 아들이 운명하는 모습을 어떻게 그렇게 지켜볼 수 있었단 말인가. 강건하셨기 때문이다. 과연 그 어머니에 그 아들이다. 그런 어머니가 계셨기에 예수님도 당신의 사명을 완수하실 수 있었던 것이다.

슬픔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은 영혼의 힘에서 비롯된다. 그것이 진짜 힘이다. 남자들은 완력을 소유하면 힘이 세지리라고 생각하지만 진짜 힘은 슬픔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다. 그것은 영혼에서 나온다. 예수님도 그 고난을 회피할 길이 없었고 모친 마리아도 예외가 아니었다. 아마도 팽목항에서 자녀의 소식을 간절히 기다리는 부모들의 마음도 이와 같을 것이다. 그 슬픔을 누가 알며 누가 위로해 줄 수 있다는 말인가.

고통의 순간에 사람은 할 말을 잃는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켜보던 마리아는 침묵했다. 제자 요한도 침묵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자리에서도 말씀하셨다. 침묵하지 않으셨다. 주님이시기 때문이다. 이방인들은 말 못하는 우상에게 끌려가지만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그 말씀을 들을 때 믿음이 생긴다. 그리고 믿음은 헛되지 않는다. 온 나라가 슬픔을 당한 이 시점에 우리가 들어야 할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리라고 했다. 절망적인 순간에도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듣는 자는 산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다고 했다.

얼마 전에 들은 말이다. 사업에 실패해 좌절하던 어떤 남자가 생명을 끊으려고 아파트 베란다에 나가 몸을 밖으로 던지려고 했다. 그 순간 마음속에 어떤 음성이 들려왔단다. “죽을 용기가 있다면 살아봐라.” 그것은 하나님의 음성이었다. 남자는 그 음성에 순종했다. 그래서 용기를 얻고 다시 사업에 복귀했다. 그 결과 그는 사업도 성공했을 뿐 아니라 인생의 큰 교훈도 얻을 수 있었다. “뛰어내리라”고 속삭이는 음성은 마귀의 음성이지만 “용기를 내어 살아봐라”고 말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세상에는 고난이 있고, 고난을 피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앞에서 절망하지 않고 극복할 수 있는 자가 진정 승리하는 사람이다. 참된 신앙은 고난의 소용돌이 속에서 탄생했고 거기에서 진가를 발휘한다. 마리아의 애통은 헛되지 않았고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하셨다. 신앙으로 인내하는 사람에게 부활의 아침이 기다린다.



김영준 예일대 철학과와 컬럼비아대 로스쿨, 훌러신학교를 졸업했다. 소망교회 부목사를 지낸 뒤 2000년부터 기쁜소식교회 담임목사를 맡고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