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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선제주랑(제56화)(19)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수지틉 가신다』 『족장을 가신다』 『감후가 계시다』- 마치 먼나라 사람들이 얘기하는 것처럼 생소하게 들리는 이 말들이 바로 궁중언어다. 아무리 외국말 공부를 많이 하고 나이가 드신 분이라도 궁에 들어와 보지 않았으면 도저히 그 뜻을 알기가 어려울 것이다. 요즘 말로 옮겨보면 각각 손톱을 깎는다, 발톱을 깎는다, 캄기가 들다 라는 말.
이렇게 몇가지 예를 들어 보았지만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수라』 『문안이 계시다』란 말들은 이미 많이 썼던 말이고 얼굴만 놓고 보더라도 안정(눈) 안경섭(눈썹) 비부(코) 구순(입) 이부(귀) 둥 청나라 말 같은 것을 일상용어로 썼다.
『이부지 아뤼오리리이까?』(귀지를 우벼드릴까요?) 『마리 아뢰다』 (머리 빗겨 드리다) 『기수 배설하다』 (이부자리를 깐다) 『소화반 하나만 물어주으소서』 (소화제 한 알만 주시옵소서) 『수부수하오시다』 (양치질하다) 『대세수 하오시다』 (손을 씻는다) 등 요즘 말과는 전혀 비슷하지도 않은 말들이 무궁무진했다.
처음 궁에 들어왔을 때 두 손을 모으고 발끝으로 하루종일 다녀야 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우선 무슨 말들을 하는지 알수 없 많은 애를 먹었다.
내가 아직도 이상하게 생각하는 말은 왕·왕비의 신발을 뜻하는 『치』가 동시에 왕의 상투를 가리킨다는 것이었다. 상투와 신발 사이의 양 극단을 왔다 갔다 하는 이 이상한 말 때문에 골탕을 먹는 나인들도 많았다고 한다.
지밀상궁이 나인들에게 『상감마마의 치뫼오너라(가져오라)』고 명령을 내리면 으례 나인들은『치를 가져왔삽기 큰 방상궁께 아뢰나이다』라고 하게 마련인데 명성황후께서는 이 『치』란 말을 아랫사람들이 함부로 입에 담는 것을 무척 싫어하셨다고 한다.
개화가 되어 고종·순종께서『치』(상투)룰 자른 다음에는 이 『치』란 말을 쓰는데 혼란이 일지 않아 좋았다.
윤황후께서 생존해 계실 때 악선재에 바깥 사람들이 가끔 들어오면 윤황후와 나, 생각시들이 하는 말을 듣고 의아해 하던 일이 기억된다. 『마마』와 「마마님』이란 말이 그것인데 『선생님』 『사모님』 등 『님』 자를 보통 최근의 존칭어로 쓰지만 궁중에서는 이와 반대다. 『마마님』 보다 『마마』 가 훨씬 높은 존칭어로 쓰여오고 있었다.
즉 나라의 최고 어른인 왕·왕비에게는 『상감마마』 『중궁전마마』라고 불렀지만 님자를 더붙인 『마마님』 은 상궁을 대접해 부르는 말이었다. 이런 사연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마마님, 마마께서 부르시옵니다』(윤 마마께서 상궁을 찾는다는 말)라고 생각시가 전하던 말을 듣고 어리둥절해 하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순종마마와 윤 마마가 서로 맞대면을 하고 말씀을 나누실 때는 서로 상대방에게 『마마께오서는 요즘 용안이 좋아지셨나이다』라고 하는 것과 같이 마마란 말을 쓰고 하오체를 깍듯이 쓰셨다. 그러나 고종께서는 엄비가 정비가 아넌 상궁출신이었으므로 『그렇지 아니한가』 『그랬나』하는 투로 반말 비숫한 말을 쓰셨다.
또한 엄비는 영친왕에게도 어마마마란 소리를 못 듣고 어머니라고 불려졌는데 이것도 상궁출신이었기 때문이었다.
윤비는 순종과 이야기를 할 때『소인』 이라고 자기를 낮추어 말했고 삼인칭으로 왕을 일컬을 때는 『페상께옵서…』 또는 『상감마마께옵서…』라고 말했다. 고종께서는 순종에게 절대 해라를 안 하시고 하오체를 쓰셨다. 예전에는 왕이 세자에게 이야기를 할 매는 해라하게 마련이었다고들 하지만 고종과 민비께선 순종이 동궁일 때도 그러지 않았다. 너무 귀여워한 나머지 장난으로 하오체를 쓰며 순종의 재롱을 보셨다는데 그 때부터 굳어져서 하오체를 쓰게 되었다고 한다. 두분 마마께서 상궁들을 부를 때는 『김명길이 이리 오너라』『박창복 이리 오너라』 하면서 이름을 부르셨는데 어투에 약간 차이가 있었다. 윤마마는 물론이지만 순종께서도 가례식 때 윤마마가 대리고 들어온 나를 부를 때는 낮고도 부드러운 말투로 부르셨다.
나이 어린 덕혜옹주나 영친왕께서는 연조가 오래되고 지위가 높은 상궁들에게는 하오체를 꼭 쓰셨다. 그러나 예전에는 원자나 공주는 물론 후궁 소생의 옹주·군일지라도 상궁에게는 해라라는 말을 썼다고한다.
상궁들에게 하오체를 쓰기 시작한 것은 철종의 무남독녀로 박영효의 부인이 되신 영혜옹주였다고도 하는데 아마 이 때부터 왕실의 권위가 조금씩 기울어지고 또 개화돼 가는 조짐이었는지 모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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