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철저한 통제… 의문 더한 현장검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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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 실시된 대구지하철 참사 방화피의자 김대한(56)씨에 대한 현장검증은 경찰의 철저한 통제 속에 진행됐다.

유족이 몰려들어 현장검증이 불가능해질 것을 우려한 조치였지만 참사 피해자와 언론을 지나치게 통제, 무언가 감추고 싶은 게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이날 김씨의 집과 주유소에 이어 김씨가 지하철을 탄 송현역에서 현장검증이 시작되자 검.경은 본격적인 통제에 들어갔다.

김씨가 지하 2층 승강장으로 내려가자 의경들이 계단을 막아섰고 검.경은 이유조차 설명하지 않았다. 몸싸움 끝에 일부 기자가 제지를 뚫고 김씨가 탄 전동차를 함께 탔지만 곧바로 내려야 했다.

경찰의 통제는 김씨가 불을 지른 장면을 연출한 월배기지창에서도 계속됐다. 전동차 안에서 현장검증이 끝나갈 즈음 기자들은 의경의 제지를 뚫고 전동차에 진입했고 전동차 안팎에서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며 입에 담기 민망할 정도의 욕설을 주고받았다.

경찰은 "기자들 때문에 현장검증을 못하겠다. 유족들이 몰려 오면 어떻게 현장검증을 할 수 있느냐"고 목청을 높였다. 피해자인 유족 대표 최소 한두명과 진실 규명을 위해 기자가 함께 해야 한다는 현장검증의 기본마저 무시한 처사였다.

현장검증이 끝나자 경찰은 중부경찰서로 이동하려던 계획을 바꿨다. 휴대전화로 지하철 참사 유족이 몰려온다는 연락을 받았기 때문이다.

검.경은 유족을 따돌리기 위해 김씨와 함께 지하철을 타고 부랴부랴 다시 송현역으로 이동했다. 송현역에서 의경들은 휠체어에 탄 김씨를 번쩍 들어올려 역을 빠져나왔고 경찰은 마치 군사작전을 하듯 김씨를 승합차에 싣고 사라졌다.

소식을 전해 들은 유족과 시민대책위 관계자들은 철저하게 자신들이 따돌려진 채 이뤄진 현장검증을 믿을 수 없다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검.경에 따돌려진 기자들은 의구심만 낳은 현장검증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황선윤 전국팀 기자
사진=조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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