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월·럼즈펠드 깊어가는 갈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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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미국의 이라크전 초반 전략 실패를 둘러싼 논쟁이 조지 W 부시 미 행정부 내에서 강온 세력을 대표하는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사진(右))과 콜린 파월 국무장관의 갈등으로 비화하고 있다.

특히 일각에서 럼즈펠드 장관이 미 전쟁계획의 기초였던 '파월 독트린'을 거부하는 바람에 미군이 이라크군의 강력한 저항에 고전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자 럼즈펠드 측의 분노가 극에 달했다고 영국 일간지 데일리 텔레그래프가 1일 보도했다.

이런 가운데 아랍 각국 대사 등 전문가로 구성된 자문그룹을 통해 전후 군정과 이라크 재건사업을 돕겠다는 국무부의 제안을 국방부가 일축해 두 수장 간의 갈등이 부처 간 대립으로 확대되고 있다.

갈등의 기폭제가 된 파월 독트린은 걸프전 당시 미 합참의장이었던 파월이 노먼 슈워츠코프 전 중부사령관의 요청보다 두 배나 되는 50만명의 지상군을 파병하는 등 "미군은 향후 전쟁에서 승리를 보장하기 위해 '적을 압도하는 무력'을 동원해야 한다"는 원칙을 천명한 데서 유래했다.

그러나 럼즈펠드 장관은 이번 전쟁을 앞두고 ▶첨단 정찰자산 활용▶정밀무기 동원▶소규모 신속배치 지상군 파견을 골자로 한 자신의 '군사혁명(RMA)' 구상에 따라 파월 독트린을 백지화했다.

미 시사주간지 뉴요커는 최신호(4월 7일자)에서 "토미 프랭크스 중부사령관은 이번 이라크전 기본계획인 '전쟁계획 1003'을 여섯번이나 다시 써야 했다"면서 "럼즈펠드 장관이 매번 '지상군이 너무 많은 것 아니냐'며 지상군 규모를 축소했다"고 보도했다.

파월 장관은 럼즈펠드 장관이 파월 독트린을 따르지 않은 이유를 묻는 기자들에게 "현역 장성들과 제독들은 이 독트린을 현실에서 어떻게 적용할지에 대해 (국방부 사람들보다)더 잘 알 것"이라면서 "그들은 내가 훈련한 사람들"이라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는 또 "전쟁은 대가를 치르게 마련이지만 피를 흘리는 사람은 식자(識者)들이 아니라 국가에 헌신하고 있는 미국의 청년들"이라고 국방부의 민간인 수뇌부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이에 대해 럼즈펠드 장관 측은 "파월 장관이 고위 군장성들과 비밀 채널을 가동하고 있다"면서 "파월 측 장성 중 상당수가 국방장관에 반기를 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두 수장 간 갈등으로 미 국무부와 국방부가 ▶이라크 문제의 유엔 상정▶개전과 군사전략▶전후 군정의 역할 등 이라크 정책의 매 단계마다 부딪치고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정효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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