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세월호 참사 와중의 지하철 추돌, 공포의 대한민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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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어처구니없는 대형 사고가 또 터졌다. 2일 서울지하철 2호선 상왕십리역에서 발생한 열차 추돌 사고는 안전불감증이 부른 사고였다. 세월호 침몰 참사의 충격이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원시적인 사고가 또 벌어진 것이다. 서울메트로 관계자들은 사고 직후 대비·안내 과정에서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여 세월호 참사 때의 문제점이 되풀이됐다.

 사고는 오후 3시30분쯤 서울 상왕십리역에서 잠실 방향으로 가던 지하철 2호선 열차가 앞에 정차해 있던 열차를 들이받으면서 일어났다. 사고로 승객 240여 명이 다쳤고 500여 명의 승객이 긴급 대피했다. 차량 2량이 탈선하고 7개의 차량연결기가 부서질 정도로 추돌의 강도는 강했다. 사고로 전동차 내의 전기가 끊겼고, 어둠 속에서 승객들이 골절상 등 크고 작은 상처를 입었다. 일부는 비명을 지르며 나뒹굴었고 창문에 얼굴을 부딪쳐 피를 흘리는 사람도 있었다.

 정확한 사고 원인은 더 조사해봐야 하지만 안전불감증이 부른 사고임에는 틀림없다. 앞선 전동차가 200m 이내로 접근해오면 자동적으로 작동해야 하는 ‘열차자동정지장치’가 제 구실을 못했다. 역내 진입 전에 경고를 하는 신호체계도 오작동했다고 한다. 뒤따라가던 전동차는 앞차가 보이지 않는 곡선 구간에서 빠른 속도로 달려 역내에 진입했다.

 사고 이후 한동안 대피방송이 나오지 않았다고 일부 승객은 주장했다. 승객들은 전기가 나간 전동차 안에서 공포에 떨다가 스스로 문을 열고 나왔다. 서울메트로 직원들은 처음에는 “자리에 앉아있으라”고 안내했다가 잠시 뒤 “대피하라”고 번복했다. 승객은 대피안내요원 없이 어두운 선로를 따라 걸어 나와야 했다. 열차에는 서울시청 앞 세월호 합동분양소를 다녀온 시민들도 상당수 타고 있었다. 일부 승객은 역내 플랫폼에 주저앉아 충격을 추슬러야 했다.

 최근 서울지하철의 경보음은 계속 울렸다. 세월호 참사 13일 전인 지난달 3일 서울 한성대입구역에서 시흥차량기지로 가던 서울지하철 4호선 회송열차가 숙대입구역과 삼각지역 사이에서 탈선했다. 3월 22일과 30일, 4월 1일과 2일에도 지하철 1·2·4호선에서 잇따라 열차 운행이 중단되는 등 최근 두 달 사이에 크고 작은 사고가 5차례나 일어났다. 이들 사고는 운행 매뉴얼을 준수하지 않거나 평소 장비 점검을 제대로 하지 않아 일어났다.

 전문가들은 비용 절감을 이유로 시스템과 장비의 교체를 미루면서 사고가 자주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또 교육 미흡과 기강 해이가 잇단 사고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국토교통부는 전국 지하철의 안전실태를 전면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세월호 참사에 이어 후진적 추돌사고를 지켜본 국민들은 단순한 불안감을 넘어 안전 공포에 떨게 됐다. 후진국형 안전사고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국가적 역량을 총집결시켜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