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인정」편수관과 특수출판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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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세칭 「검인정교과서의 부정사건」이 몰고 온 여파는 상상 이상으로 심각한 문제를 수반하고 있는 것 같다. 폭리·탈세·증수뇌 등 부정행위의 규모가 1백50억원대에 달하며 수백만명에 달하는 학생·학부모들에게 헤아릴 수 없는 피해와 배신감을 안겨 주었다는 점에서 관련자들에 대한 응징이 있어야 한다는 데에는 이의가 있을 수 없다.
그리고 그 결과로 문교부 안에서만 32명의 전·현직 공무원들이 파면되거나 징계를 받는 사상희유의 기록이 남겨졌으며, 이 회사와 주주들의 탈세액 1백27억원의 추징결정이 내려졌다. 다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로써 초래될 우리 나라 출판계의 도산위기와 교과서 편찬업무의 사실상의 중단사태는 어떻게 해서라도 방지되어야할 것이다. 죄가 밉다 하여 그와 같은 사태를 방관하는 것은 마치 쥐를 잡기 위해 독 전체를 깨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이 되겠기 때문이다.
우선 세금포탈액 1백27억원의 추징은 6월말까지라는 짧은 기한부로 되어 있다.
그 이행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그것은 공정을 실한, 이 나라 출판업계 전체에 대해 사실상의 폐문을 강요하는 위험이 있다.
한 상사법인의 부당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을 그 회사의 주주전체에 대해서 요구하는 것과 다름없는 전 특수회사에 대한 추징결정의 당부는 이번 사건의 특이한 성격에 비추어 잠깐 덮어둘 수도 있다. 그렇지만 소유재산이라야 얼마간의 건물·집기, 그리고 출판물의 지형 밖에는 없는 이들 지주출판사들에 평균 5천만원내지 1억원, 심지어는 5억원까지의 추징금 징수를 2∼3개월 내의 기한부로 요구한다는 것은 지나친 일이 아닐까.
이번 사건에 관련된 것으로 알려진 1백17개 지주회사는 이 나라 신간출판의 30% 이상, 그리고 양서출판의 거의 전부를 담당해 온 중견회사들로서 그들이 기왕에 수행해온 문화적·사회적 공헌은 정부의 거듭된 포상실적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이들 가운데에는 해방 후 손해를 무릅쓴 꾸준한 양서출판의 공로 또는 우량납세자라는 이름아래 누차 국민훈장·문화훈장·국무총리 표창까지 받은 사람이 적지 않으며, 사실로도 이들을 제외하고서 이 나라의 출판문화를 논의하기는 어려울 정도다. 그렇다면 적지 않은 동정자산을 가지고 문화와는 전혀 인연이 없는 일반 상사회사들의 탈세추징에 있어서도 정상참작의 관용을 베푼 실적이 얼마든지 있는 터에 이들 출판사들에만 지나친 가혹을 강요한다는 것은 공평을 실한 처사가 아닐까 생각된다. 세금 포탈액은 마땅히 추징하되 좀 더 여유를 주고, 폐문의 위기만은 회피하는 방안이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우리는 문교부 교육연구관(편수관)들의 무더기 사임으로 빚어진 교과서편수행정의 사실상 중단사태에 대해서도 일언하지 않을 수 없다. 본난은 이번 사건이 해방 후 누적돼온 교과서 행정의 묘미 때문에 언젠가는 반드시 터질 성질의 것이었음을 지적하고, 차제에 문교부의 교과서행정에 근본적인 개혁이 단행되어야 하겠다는 것을 제언한 바 있다.
편수담당 교육연구관 19명이 매년 3백82개 과목 1천3백1종의 국정교과서 및 검인정 교과서의 저작·감수(1인당 20여 과목 68여종)를 맡아야 하는 격무에 시달리면서도 그 보수는 월액 고작 19만원내외(연구수당 포함)라는 박봉을 그대로 두고서는 교과서의 저작과 감수가 제대로 될 수 없다. 그러한 교육연구관중 단 1명만을 제외한 전원이 면직·징계 당한 이번 사건이 우리는 잠시라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이 나라 교과서 편수행정의 근본적인 개선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마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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