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한 연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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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세월호 실종자 무사귀환을 기원하는 노란 리본을 달고 은퇴 기념메달 행사에 참석한 김연아. [뉴스1]

아디오스, 그라시아스(Adios, Gracias·안녕, 고마워요).

 ‘피겨 퀸’ 김연아(24)가 현역 선수로 팬들에게 전하는 마지막 메시지다. 팬들에게 작별을 고하고 감사를 표하는 피날레 무대지만 여왕의 마음은 어느 때보다 무겁다. 세월호 침몰 사고의 여파로 조용히 마지막 무대를 준비하고 있다.

 김연아는 4일부터 사흘 동안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 특설링크에서 아이스쇼를 펼친다. 현역 은퇴식을 아이스쇼를 통해 한다고 보면 된다. 김연아는 소치 겨울올림픽이 끝난 뒤부터 아이스쇼 준비에 전념했다. 팬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지난달 1일 인터넷 예매를 시작한 지 30분 만에 사흘 공연 전 좌석이 매진됐다.

 축제 같은 은퇴식을 준비했지만 지난달 16일 세월호 참사 이후 행보가 바뀌었다. 사고 이후 김연아는 외부 활동을 자제했다. 지난달 28일 한국조폐공사 제품홍보관에서 열린 은퇴 기념 메달 공개 행사는 김연아 측의 요청으로 두 차례 연기한 끝에 개최됐다. 기념 메달 발매는 기쁜 일이지만 김연아는 숙연한 모습으로 행사를 치렀다. 검은색 원피스 왼쪽 가슴 부분에 노란 리본을 달고 나온 김연아는 “세월호 침몰 사고의 희생자분들께 애도를 표합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길 바랍니다”라고 아픈 마음을 전했다. 이에 앞서 21일에는 유니세프 한국위원회를 통해 성금 1억원을 기부했다. 같은 날 자신의 트위터에 ‘기적이 일어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기념 메달 판매 수익금도 세월호 참사 실종자 구조와 피해자 지원에 쓰기로 했다.

 한때 김연아는 아이스쇼 연기도 검토했지만 예정대로 치르기로 했다. 해외 초청 선수들의 일정 문제도 있었지만 아이스쇼를 기다려 온 팬들의 마음을 저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올댓스포츠 관계자는 “고심 끝에 예정대로 하기로 했다. 최대한 차분한 마음으로 팬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팬들의 마음도 아프다. 회원 수 8만5000여 명의 다음 카페 ‘행복한 스케이터 김연아 팬카페’는 김연아가 트위터에 올린 메시지와 사진을 배경화면으로 설정해 마음을 함께 나눴다. 카페를 운영하는 오윤택(36)씨는 “사회적으로 무거운 분위기에서 아이스쇼가 치러져 팬 입장으로서도 조심스럽다. 당초 선수를 위해 예정했던 이벤트도 취소하고 최대한 차분한 자세로 마지막 무대를 함께할 계획”이라고 했다.

 김연아는 현역 시절 70~80% 수준으로 스케이팅을 연습하며 아이스쇼를 준비하고 있다. 약 2시간 동안 진행될 아이스쇼에서 김연아는 소치 겨울올림픽 쇼트 프로그램이었던 ‘어릿광대를 보내주오’와 함께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 중 ‘공주는 잠 못 이루고’를 새 갈라 프로그램으로 선보일 계획이다.

 김연아의 현역 마지막 무대에는 소치 올림픽 동메달리스트이자 독립군 의병장 민긍호 선생의 외고손자인 데니스 텐(21·카자흐스탄)과 소치 올림픽 페어 금메달리스트인 막심 트란코프(31)·테탸나 볼로소자(28·이상 러시아)가 나온다. 또 스테판 랑비엘(29·스위스), 알렉세이 야구딘(34·러시아) 등 남자 피겨 스타들이 함께하고, 소치 올림픽에 함께 출전했던 후배 김해진(17·과천고), 박소연(17·신목고)도 선배의 마지막 무대를 돕는다.

 반면 소치 올림픽 여자 싱글에서 경쟁했던 금메달리스트 아델리나 소트니코바(18·러시아), 동메달리스트 카롤리나 코스트너(27·이탈리아), 오랜 라이벌 아사다 마오(24·일본) 등은 참가하지 않는다. 현역 시절 아이스댄스 선수로 활약했던 셰린 본(38·캐나다)만 여자 싱글 선수로 초청됐다. 올댓스포츠 관계자는 “몇몇에게 초청 제안을 했지만 일정이 겹치는 선수들이 대부분이었다”고 전했다.

김지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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