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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한국에의 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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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금년부터「비교우위」나 국제경쟁력이란 말이 갑자기 각광을 받고 있다. 이는 한마디로 말해 한국경제도 이제 좌표설정이 필요하다는 뜻이 된다. 이제까지 한국경제는 고도성장으로만 질주해 왔다. 국제경쟁력이 있든 없든 모든 것은 다하려는 만물상식 산업정책이었다. 수입대체만 되면 좋다는 식이었다. 국산대체에 너무 비중을 두었기 때문에 비싼 가격과 사회적 부담을 강요했다. 또 국내산업에 대한 보호의 벽을 너무 높이 쳐서 국제적 기준으로 보면 기업으로서 존재조차 어려운 것들이 독과점의 이익을 만끽한 것도 있다.

<「비교우위」의 고민>
그러나 세계경제의 흐름으로 보아 이제 차차 보호의 벽을 허물지 않을 수 없다. 내외의 압력이 높아지고 있다. 교역상대국들은 관세무역계획 등의 무역장벽을 허물도록 강력히 요구하고 있고 국내에서도 국산대체의 명목아래 비싼 물가를 계속 감수해야 하느냐에 비판이 많다. 한국은 어차피 구조적으로 수출 의존적으로 되어 있다.
한국의 수출입 의존도는 60년대 후반부터 급격히 늘어 최근 현재 75%선에 이르렀고 앞으로도 계속 높아지지 않을 수 없는 추세다. 지난 10년간 수출신장률은 연평균 28·9%(70년 불변가격)로서 같은 기간중의 내수증가율 9·2%를 훨씬 앞지르고 있다. 수출급증이 고도성장을 주도했고 산업구조가 그렇게 경직화되어 있다.
국내경기는 수출동향에 좌우됨은 물론 성장률도 수출증가의「버로미터」라 볼 수 있다. 이렇게 수출동향에 경제가 전적으로 좌우되는 이상, 이의 조화적 운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수출은 항상 상대방이 있다. 의욕과 애국심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교역을 계속 확대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 한국경제의 기본명제라면 이를 어떻게 교역상대국과 호혜적으로 보완해 가느냐가 문제다.
한국은 내수의「쿠션」이 약하기 때문에 더욱 마찰 없는 교역확대가 필요하다. 이미 세계경기는 동시화현상이 뚜렷해졌다. 30년대 대공황 때엔 미국의 불황이 1∼2년 뒤에나「유럽」에 상륙했다.
그러나 이젠 불과 3∼6개월 시차다. 따라서 작년 하반기부터의 세계적인 경기침체는 벌써 한국경제에 한 풍으로 나타나고 있다.
작년의 세계적인 반짝 경기 때문에 한국의 무역수지도 크게 개선되고 고도성장을 이룩했으나 금년은 이를 기대할 수 없다. 오히려 만성적인 국제수지적자에 시달리는 EEC는 물론 미국까지도 무역흑자 국에 대한 비판의 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국은 작년 중 대미·대EEC교역에서 모두 흑자를 기록했다. 작년 우리나라의 무역수지가 적자가 난 것은 워낙 대일 적자가 많았기 때문이다.

<호혜무역 불가피>
한국과 미국·일본, 또 한국과 EEC·일본은 또한 삼각관계에 있다. 만약 미국이 일본에 대해 무역적자가 벌어지면 일본을 포함해서 한국·대만·홍콩 등 이 한꺼번에 수입규제조처를 당하게 된다. 이미 섬유협상에서 경험한 바다. 한국으로선 유탄을 맞은 셈이다. EEC와 일본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 작년에 일본이 대미·대 EEC무역흑자를 모두 1백억 달러 가까이 냈기 때문에 한국이 같이 당할 우려가 많다.
집중호우 식 수출급증이나 일방적인 무역불균형은 반드시 반격을 받는다. 한국경제의 미래상은 현재의 일본을 보면 교훈 되는 바 많다. 일본의 수출급증은 미·EEC의 심한 반발을 받고 있으나 이를 하루 아침에 고치기도 어렵다. 이미 산업구조가 수출주도형으로 굳어 있기 때문이다. 일본에선 최근 산업구조의 재편문제가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선진공업국과 개도국에 모두 호혜적일 수 있는 산업구조를 찾자는 것이다.
국내산업에 대한 과잉보호를 풀고 국제경쟁력에 입각한 산업의 국제적 재배치를 이룩하자는 시도다. 일본산업의 방향은 수산·식료품·천연섬유·방송·가구부문을 점차 개도국으로 넘기는 대신 기초과학·정밀기계·철강 l차 제품·전기 기기 등이 점차 상승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일본은 50년대에 면직물·의복·화섬 등을 수출의 기폭제로 삼아 60년대에 선박·자동차·기계로 이행하고 앞으론 고급염료·정밀전자제품 등 지식집약산업과 생 자원·「에너지」산업으로 고도화되리라는 것이다.

<독과점에 회오리>
한국은 일본의 산업 및 수출구조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으므로 이와 같은 일본의 추세는 앞으로의 산업전략을 선정하는데 시사하는 바가 많을 것이다. 마찰 없는 무역확대는 보완적인 산업구조를 통해 가능하나 미·일·EEC의 산업추세를 감안하여 산업전력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정부는 한국의 산업전략을 기계·전자·주택 등의 중점개발에 둔다는 총론만 제시했을 뿐 각 론 적으로 이를 어떻게 끌고 갈 것인지는 아직 방황하고 있는 것 같다. 또 국내산업의 보호장벽에 대한 제거「스케줄」도 못 잡고 있다.
그러나 어차피 추세는 산업의 국제화를 지향하지 않을 수 없다. IMF 8조국으로의 이행이나 대폭적인 수입자유화가 절박한 문제로 등장했다. 그렇지 않으면 수출의 자율규제를 강요당할 것이다. 산업의 국제화는 비교우위산업의 개발과 기업경쟁력의 강화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오랫동안 온실 속에서 보호되었던 기업들은 심한 시련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보호의 울타리 안에서 독과점의 높은 가격에 안주했던 기업들이 해외기업과 경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큰 무기였던 저임에도 계속 매달릴 수 없다. 한국경제나 기업들은 이제 차차 생산성과 능률·경영합리화의 추구만이 유일한 생존의 길임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최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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