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의원 하루에 4곳 '폐업', 개원가 현실 어쩌다가…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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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의사는 ‘장밋빛 인생’을 보장하는 직업으로 꼽혔다. 사회적 부와 명예를 동시에 얻을 수 있는, 청소년 희망직업 1순위이기도 했다. 하지만 ‘좋은 시절’은 끝이 났다. 의사들 입에서는 ‘못해먹겠다’는 푸념과 한숨이 끊이질 않는다. 혹자는 의사가 3D업종으로 몰락한지 오래라고 말한다. 신용불량자 비율이 가장 높은 직종이 의사라는 말도 나온다. 특히 동네의원은 대형병원 쏠림현상이 심해지면서 현재 ‘바람 앞 등불’과도 같다.

최근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임금자 연구위원은 의료정책포럼을 통해 ‘요양기관 요양기관 개․폐업 현황을 통해 본 개원가의 현주소’를 발표했다. 이를 토대로 악화일로로 치닫는 개원가의 현실을 짚어본다.

동네의원, 신규 대비 폐업률 80% 이상

매년 3000여 명의 의사가 새롭게 배출된다. 이 중 일부는 동네의원을 차린다. 지난 1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발표한 ‘2013 요양기관 개․폐업 현황’에 따르면, 2009년 1986곳, 2010년에는 2001곳, 2011년에는 2030곳 의원이 문을 열었다. 2012년과 지난해는 신규 개원한 의원 수가 각각 1821, 1832개소로 주춤했다. 평균적으로 매일 5곳의 동네의원이 문을 연 셈이다.

주목할 것은 신규 개원 대비 폐업하는 의원의 비율이다. 하루에만 4~5곳 동네의원이 경영난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문을 닫는다. 지난해 전국적으로 5256개 요양기관이 폐업했다. 그 중에서 동네의원은 1536개소다. 하루 평균 4.2개 꼴이다. 매년 의사가 배출됨에 따라 새로 문을 여는 의원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에 못지 않게 폐업도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임금자 연구위원은 “폐업 의원보다 신규 개원이 많다지만, 대표적인 고소득 자영업으로 알려진 의원이 이렇게 많이 폐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서울고등법원 담당지역의 개인회생 신청자 중 의사가 207명으로 회사 대표(225명) 다음으로 많다고 한다. 의원의 경영난을 더 이상 버티기 힘들어 정부에 대책마련을 주문한 것이 이미 오래 전 일”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최근 5년간 동네의원 폐업률은 70%를 웃돈다. 신규 개원 대비 폐업비율은 2009년 74.9%에서 2010년 77.9%, 2011년 81.9%, 2012년 89.2, 2013년 83.9%로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임 연구원은 “의료서비스 공급시장은 포화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대형병원에 비해 인적․물적 경쟁력이 열세인 동네의원은 생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의원과 대형병원이 무한경쟁체계로 운영되고 있는 현재 의료서비스 시장에서 의원의 높은 폐업률은 당연한 결과라는 게 임 연구원의 설명이다.

산부인과 존폐 위기, 개원보다 폐업 월등히 많아

특히 산부인과와 외과의 폐업률은 심각한 수준이다. 대부분의 진료과목은 신규 개원이 폐업 수 보다 많았지만, 산부인과․외과만이 문을 여는 곳보다 닫는 곳이 더 많았다.

지난해 산부인과는 43개소가 문을 열었지만, 이보다 2배 이상 많은 96개소가 문을 닫았다. 신규 개원 대비 폐업률이 223%에 달한다. 1개 산부인과가 문을 열면 2개 이상의 산부인과는 폐업한 셈이다. 이는 전체 의원 폐업률의 2배 이상에 해당한다. 개원한 의원 수만 보더라도 내과(165개소)에 비해 턱없이 적다.

임 연구위원은 “산부인과 폐업률은 ‘산부인과’라는 진료과목의 존폐를 우려해야 할 정도”라고 밝혔다. 산부인과 폐업률이 높을 수밖에 없는 원인으로는 ▲포괄수가제 적용으로 비보험수입조차 기대하기 어려워진 현실 ▲매우 낮은 수가 ▲높아진 출산 위험과 그로 인해 높아진 의료사고 가능성 ▲의료소송의 증가 등을 꼽았다.

실제 산부인과 전공의 지원율은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산부인과 전공의 정원이 축소됐음에도 불구하고 충원율은 정원의 50~60% 수준에 머문다. 산부인과 신규 전문의는 2001년 270명에서 2012년 90명으로 줄었다. 열악한 수련과정과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중도포기하는 비율도 높다. 임 연구위원은 “산부인과 사태를 그대로 방치하면 분만 가능한 산부인과가 없는 시대가 도래할지도 모른다”고 지적했다.

이 외에 외과는 신규 개소가 38곳인 반면, 폐업은 52곳으로 나타났다(폐업률 136%). 신경외과 95.2%, 일반의 92.8%, 소아청소년과 84.1%, 안과 82.8%도 높은 폐업률을 보였다.

지역별로도 신규 개원과 폐업의 차이가 나타났다. 서울, 경기 지역이 신규 개원도, 폐업도 많았다. 그래도 개원이 폐업 보다는 많았다.

반면 충북, 경북, 경남은 폐업한 의원이 신규 개원보다 많았다. 가장 높은 폐업률을 보인 지역은 경북지역이다. 경북지역에는 2013년에 50개 의원이 신규 개원하고 58개 의원이 폐업했다. 폐업률로 보면 116%이다. 높은 폐업률로 인해 지방의 의료 공백을 우려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올해도 여전히 암울, 정책기조 바뀌어야

이런 개원가의 현실, 올해는 나아질 수 있을까. 임 연구위원은 “별로 나아질 것이 없다. 오히려 더 어려워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수가결정체계의 변경, 수가의 대폭 인상, 환자 수 급등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대병형원을 선호하는 환자가 늘고 있는 상황에서 인적, 물적 측면으로 우위에 있는 대형병원으로의 환자 쏠림을 막을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 2012년 대비 지난해 총내원일수와 총요양급여비용은 각각 0.1%, 5.2% 증가한 반면, 의원의 내원일수는 오히려 2% 감소했다. 의원의 총요양급여비용은 1.8% 증가하는데 그쳤다. 임 연구위원은 “환자 수 증감의 동향을 파악할 수 있는 내원일수가 의원 부분에서는 아예 마이너스 성장”이라며 “이는 환자 수 감소를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임 연구위원에 따르면, 의원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하루 최소 40~50명의 환자를 봐야 한다. 하지만 의료정책연구소의 조사에 의하면 전체 의원의 44.9%가 하루 평균 50명 이하의 환자를 진료한다. 하루 외래환자가 25명 이하인 의원도 17%다.

또한 의원 당 평균 3억 7000만원의 부채를 안고 있다. 임 연구위원은 “의원의 총요양급여비용 증가율은 건강보험 총요양급여비용 증가율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며 “정부의 특단의 대책이 없으면 2014년에는 더 많은 의원이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고 예상했다.

그렇다면 대책은 무엇일까. 임 위원은 ▲의료 원가를 무시하고 낮게 책정된 수가를 현실화하는 것 ▲ 무너진 의료전달체계의 재정립 ▲수량과 질 규제 등 의료공급과 관련된 규제를 철폐나 완화 ▲급여시스템을 현재의 네거티브시스템에서 포지티브시스템으로 전환 등을 꼽았다.

원가 이하의 수가 수준이 계속되고, 대형병원으로 환자 쏠림 현상이 지속되는 한, 의원 폐업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

임 의원은 “현재 개원의가 개원을 위해 소요되는 모든 비용을 스스로 조달하고, 운영에 대해서도 전적으로 책임진다. 하지만 의원의 운영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거의 모든 요소는 타인에 의해 결정되는 구조로는 현재의 의료보장수준마저도 유지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정책기조가 바뀌지 않는 한, 동네의원의 붕괴는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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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경아 기자 okafm@joongang.co.kr <저작권자 ⓒ 중앙일보헬스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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