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사고 당일 백악관 게양했던 성조기 가져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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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회담을 하기 전에 먼저 세월호 사고 희생자와 실종자들을 위해 묵념을 했으면 합니다.”

 25일 방한해 청와대를 찾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박근혜 대통령과의 회담에 앞서 세월호 희생자에 대한 애도를 표했다. 묵념도 먼저 제안했다. 상심한 한국민을 위한 배려가 엿보이는 부분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방한 전부터 세월호 사고에 대한 위로를 표할 방법을 고심해왔다. 경기도 안산 등을 찾는 방안도 검토했지만 경호와 의전 문제로 주민에게 폐를 끼칠 수 있다는 판단에서 방문은 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세월호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 문제에 각별히 신경을 썼다.

오바마 대통령은 묵념 뒤 박 대통령에게 성조기를 전달했다. 세월호 사고가 발생한 지난 16일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백악관에 게양했던 성조기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에서는 참전용사 등이 목숨을 잃었을 때 사랑하는 이들에게 성조기를 증정하는 전통이 있다”며 “그 전통에 담긴 정신으로, 어려운 시기에 함께하겠다는 미국민의 마음을 담아 사고 당일 게양했던 성조기를 가져왔다”고 밝혔다.

애도의 뜻을 담은 증서도 함께 전달했다. 박 대통령은 이에 “세심하게 마음을 써줘 깊이 감사한다”고 답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정상회담이 끝난 뒤 열린 공동기자회견에서도 다시 한번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나도 두 딸의 아버지이고 이번에 희생당한 학생들이 내 딸들 또래다. 부모들의 마음이 어떨지 상상할 수조차 없다”면서다. 한국에 오기 전까지 포함해 공식적으로는 총 세 차례, 박 대통령에게 직접 한 차례 세월호 사고에 대한 위로를 표현한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많은 학생이 희생된 안산 단원고엔 백악관의 목련 묘목을 마음을 담은 징표로 전했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봄마다 아름답게 부활하는 목련의 의미를 학생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 이는 아름다운 생명과 한·미의 우정을 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는 “목련 나무는 미국의 7대 대통령인 앤드루 잭슨 대통령이 먼저 세상을 떠난 부인 레이철을 기리기 위해 백악관에 심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잭슨 대통령은 1829년 3월 취임했는데 레이철은 직전인 1828년 12월 숨져 퍼스트레이디가 되지 못했다. 이에 잭슨 대통령은 고향 테네시를 떠나면서 레이철과 함께 살던 집에서 목련 싹을 가져와 백악관 남쪽 뜰에 심었다.

이 목련은 백악관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로 알려져 있다. 목련은 숭고한 정신, 우애라는 꽃말도 지니고 있다. 애도의 뜻과 함께 한국과 미국의 각별한 우정을 강조하는 의미도 담겼다.

1965년 박정희 전 대통령 부부가 방미했을 때는 육영수 여사가 백악관 뒤쪽에 한국산 목련을 심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해 3월 이스라엘에 갔을 때 목련 묘목을 가져가 시몬 페레스 이스라엘 대통령 관저 뜰에 직접 심어주기도 했다.

유지혜 기자

[사진 설명]

1 오바마 대통령은 25일 박근혜 대통령에게 세월호가 침몰한 16일 백악관에 게양됐던 성조기를 전달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민의 마음을 담았다”고 말했다. 로즈메리 폴리 미국 의전관이 청와대에서 삼각나무 상자에 담긴 성조기를 보여주고 있다. [로이터=뉴스1]

2 미국은 전통적으로 소중한 사람이 목숨을 잃었을 때 삼각형 모양으로 성조기를 접어서 전달해왔다. [로이터=뉴스1]

3 오바마 대통령이 25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미군 장병 시민권 수여식에 참석했다. 장병 13명과 부인 7명 등 20명에게 직접 미국 시민권을 줬다. 오바마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불법체류자를 구제하기 위해 이민법 개정 드라이브를 걸고 있지만 공화당이 다수인 하원의 반대에 막혀 있다. [AP=뉴시스]

4 오바마 대통령은 많은 학생이 희생된 단원고에도 마음의 징표로 백악관 뜰에 심어져 있는 목련 묘목을 전했다. 지난 21일 백악관 목련나무 아래서 열린 부활절 행사에 참석한 오바마 대통령. [로이터=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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