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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영광의 뒤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영광의 뒤안길에는 남모르는 고생이 있는 법. 수출고 80억「달러」는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공원들의 손 기술과 땀, 「아프리카」오지를 헤매는 「세일즈맨」의 발길, 밤낮을 가리지 않는 수출상사들의 활동. 그리고 정부의 수출「드라이브」정책이 엉켜서 이룩된 의지의 승리인 것이다.
수출일선에 나선 기업체는 지금 2천1백41개 업체. 이들이 해외에 설치한 지사만도 1천1백81개에 이른다. 80억「달러」의 중간고지에 올라 땀을 닦고있는 수출업계의 뒤안 얘기를 엮어본다. <편집자주>

<한해 53개국 돌기도>
대우실업의 섬유수출을 맡고있는 신 모 부장은 올 들어 절반이상을 해외여행으로 보냈다.
그가 찾아간 나라는 53개국.
그럴듯한 입찰정보만 굴러오면 특공대처럼 달려나가고 나간 김에 이웃나라에도 찾아가 「세일즈」를 해야하는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가정불화가 움텄고 급기야는 이혼의 위기에 직면하는 처지가 됐다.
회사에서는 신 부장의 경우가 심각해져 중재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얘기다.
물론 이런 경우는 극단적인 예에 속할지 모른다.
「샘플」이 든 가방을 들고 외국공항에 내렸을 때의 생소함, 기후와 음식과 언어의 시련, 그리고 「바이어」들과의 신경전은 해외여행의 화려한 환상을 깨기에 충분하다. 그래서 대수출상사의 직원들은 자기도 모르게 외국나들이가 오히려 지겹다는 얘기를 털어놓는 것.
해외여행 뿐이 아니다. 하청회사, 또는 제휴회사 등을 많이 거느리고 있는 종합상사에서는 제품출하를 독려하기 위해 공장을 돌며 그곳에 상주하다시피 한다.
금년 같이 수출이 잘되는 때는 제품을 제때 확보 못해 애를 먹지 않은 수출상사가 없을 지경인데 그러다 보니 공장「똘뱅이」가 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

<여름휴가조차 반납>
섬유류 업체와 전자제품공장 등 호황업체들이 거의 쉬는 날이 없이 생산해냈지만 수출회사들 가운데는 아예 여름휴가조차 반납한 곳도 있다.
삼성물산이 입주한 「빌딩」은 하오 8시 이후엔 전등을 끄도록 되어있다. 그러나 이 회사가 자리잡은 27, 28층만은 예외로 밤늦도록 불을 켜고 일을 볼 수 있게 특별 조치됐다.
해외지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밤늦게까지 불이 켜진 곳은 한국과 일본상사가 입주한 곳이 십상이고 이 때문에 항의를 받는 일이 종종 있다는 얘기. 그래서 동양의 유대인 소리까지 듣기도 한다. 수출상품을 실어갈 배를 확보 못해 「컨테이너」부두에 가서 잠을 잔 수출상사 직원들도 있다.
삼성물산은 「사우디아라비아」에 「시멘트」2만t(1백만「달러」)를 수출하기로 운 좋게 계약을 맺었으나 선박을 확보 못해 유산될 지경에 달했다.
「홍콩」지사로, 동경지사로 곳곳에 「텔렉스」를 쳐서 화물선을 확보하도록 연락했지만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
다행히 「바이어」측에서 체선료를 부담하는 조건을 응낙, 석 달만에 가까스로 해결했다.

<바다 위에서 6개월>
중동지방엔 항구사정이 나빠 상품을 싣고 가도 하역하기까지는 두 세 달. 어떤 때는 5∼6개월 동안 바다 위에서 대기해야하는 실정이다.
그동안 하루t당 5∼7「달러」의 체선료를 물게되어 있다.
국내 전자업계는 지난 연초에 미국에서 3천5백만 대의 자동차용「트랜시버」(23「채널」 )를 수입한다는 방침임을 전해듣고 너도나도 이 제품의 생산에 참여했다.
한데 지난 7월27일 미연방 통신위는 「채널」을 40으로 바꾸어 규격승인 했다.
이 바람에 23「채널」의 「트랜시버」는 판로가 하루아침에 막히고 막대한 시설비를 건지지 못해 도산한 업체가 많이 생겼다. 일본에서도 1백여 업체가 문을 닫을 정도였다.
전자업계의 일대 파동이었다. 해외수요의 변동과 시장정보가 미치는 영향력이 얼마나 크다는 사실을 반증한 얘기다.
K업체가 적지 않은 개발비를 들여 제품을 개발해 이것을 견본으로 외국「바이어」에게 보냈는데 그것이 당장 「라이벌」업체로 넘어가 거기서 그 제품을 생산 수출한 일도 있다.
경쟁의 치열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80억「달러」의 수출상품을 쌓아놓으면 남산덩어리 만한 것이 수 십 개에 해당한다.
작게는 이쑤시개, 못, 은행잎으로부터 크게는 선박, 자동차, 철도차량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우여곡절을 거쳐 수출되고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는 것이다. <이제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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