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책상, 나와 닮았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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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솔직히 털어놓는 게 좋겠네요. 처음엔 구색 맞추기용으로 몇 장만 받아 쓸 요량이었습니다. 바로 지금 이 면에 한가득 펼쳐있는 독자 여러분의 책상 사진 말입니다. 은밀한 나만의 공간을 남에게 공개하는 건 사실 쉽지 않은 일이죠. 게다가 번거롭게 사진을 찍어 이메일로 보내야 하고요. 그래서 책상 사진을 받는 이벤트를 하면서도 속으론 ‘보내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라고 생각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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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이벤트 공지가 나간 9일. 정확히 오전 5시 16분부터 이메일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서초구에 사는 신준우 독자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신문을 보는 장소”라며 9일자 江南通新을 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담은 책상 사진을 찍어 보내온 것을 시작으로, 다양한 연령·직업의 독자 사진이 줄을 이었습니다. 이른 아침에 사진을 보낸 분들은 약속이나한듯 다들 책상 위에 江南通新을 펼쳐놓았더군요. 의외에 반응에 살짝 놀랐습니다.

 독자 여러분에게 원했던 건 단지 책상 사진 뿐이었지만 사진 파일과 함께 보내온 사연 읽는 재미가 쏠쏠하더군요. 그 사연을 읽으면서 책상이 이렇게 많은 사람에게 대단한 존재구나, 라는 걸 새삼 느꼈습니다. 직장인이나 학생처럼 하루종일 책상 앞에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 뿐 아니라 심지어 전업주부에게도 말입니다.

 책상 사진을 받고보니 많은 전업주부가 식탁을 책상으로 쓰고 있더군요. 이승희 독자는 “주부에겐 식탁이 곧 책상”이라며 “식사하지 않는 식탁 위의 시간은 하루 중 가장 편한 나만의 시간”이라고 적어주셨죠. 강영이 독자는 “각자 자기 책상이 있지만 온 가족이 내가 결혼할 때 해온 이 식탁에 모여 공부하고 일한다”며 “밥먹듯이 공부하고 일 하라는 뜻이라고 우스개소리를 한다”는 사연을 주셨습니다. 이승주 독자 역시 “남편과 두 아들이 나가면 아침상 치우고 식탁에 앉아 커피를 놓고 신문을 읽는다”며 그날 江南通新이 제안한대로 양재천으로 나가보겠다는 의지를 내비치기도 했습니다. 궁금합니다. 그날, 양재천 가셨나요.

 주부에게 책상이 얼마나 소중한 공간인지 알 수 있는 메일도 많았습니다. 서성이 독자는 “세 아이 엄마로, 아내로, 며느리로, 딸로 빡빡한 현재를 살아가지만 홀로 이 책상 앞에 앉으면 잊고 지냈던 지난날의 꿈을 되찾는다”며 “비록 작은 책상이지만 마음을 부풀게 하는 마법같은 공간”이라고 했습니다. 정수경 독자는 “두 아들도 개인방이 있고 남편도 서재가 있는데 맞벌이 주부는 나만 책상이 없었다”며 “얼마 전 조그만 사이드테이블를 손수 조립해 나만의 서재를 만들었더니 너무 기뻐서 회식도 빠지고 일찍 집에 들어와 행복하게 하루를 마무리한다”고 적어주셨죠. 초등 5학년, 2학년 두 딸을 뒀다는 김수민 독자는 “2년 전 지금 집으로 이사오면서 10년만에 내 책상을 갖게 돼 엄청 기뻤다”며 “엄마에게도 책상은 꼭 필요하다”는 의견을 주셨습니다.

 학생과 선생님이 보내온 책상 사진도 적지 않았습니다. 이번 특히 여객선 세월호 침몰사고로 많은 학생을 잃은 슬픈 사연 탓인지 학생들이 보내온 책상 사진에 유독 마음이 쓰였습니다. “키가 커서 의자가 작아졌다”는 중1 백형우 학생, “시험기간이라 각종 참고서와 풀다 만 문제집이 즐비하다”고 설명을 붙여온 송지나 학생, 많은 시간을 보내는 독서실 책상을 찍어온 고3 이은지 학생, 취업준비 하느라 전공 프린트물과 각종 취업자료를 책상 위에 늘어놓은 대학교 4학년 이지수씨…. 모두 잘 지내고 있겠죠. 고등학교 문학 선생님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김현진 독자는 책상을 “삶의 일부”라고 소개했습니다. 학생과 감성을 나누는 문학 교재, 제자가 보내온 그림 엽서, 지난해 스승의 날에 받은 카네이션펜, 화이트데이에 아들이 준 사탕 등 책상 풍경은 그 자체로 일상의 많은 이야기를 한다는 거죠. 이제 막 발령받은 신규 교사 강혜림 독자의 책상 사진도 도착했습니다. “사회인이 되어 내 자리를 보니 뿌듯하다”는 사연과 함께요.

“현장에서 기름 만지는 업무를 하는 터라 꼬질꼬질한 장갑이 항상 있다”며 목장갑이 얹어져 있는 사진을 보내온 시멘트1포대란 아이디의 한 독자도 기억에 남습니다.

 다른 언론사 기자, 기자와 가장 가까운 홍보실 직원, 공무원 등 다양한 직업의 독자 여러분도 기꺼이 책상 사진을 보내주셨습니다. 그 중엔 “평소 무심히 사용하던 책상이었는데 덕분에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는 독자(hblee88)도 있었죠.

 이렇게 마음을 담아 참여해준 독자 여러분, 또 마음 속으로 항상 관심있게 지켜봐온 독자 여러분. 모두 감사합니다.

글=안혜리 기자 사진= 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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