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가가 10% 인상되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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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석유에 관한한 근거 없는 낙관이나 안이한 타성을 벗어나야 한다. 설사 오는 12월의 OPEC회의에서 다시 유가가 동결된다해도 우리에게는 문제의 해결이 될 수 없다. 그것은 오직 또 다른 요행에의 기대나 타성을 낳을 뿐인 것이다.
석유가 재 인상 움직임을 앞두고 가장 우려되는 것은 첫 파동 이후 지난 3년간의 쓰라린 경험과 교훈이 점차 잊혀져 가고 있는 점이다. 한 때는 열의를 가지고 논의되었던 「에너지」 정책이나 산업 구조의 재편성 문제가 그동안 얼마나 진전되고 결실을 보았는가. 국산 「에너지」의 개발은 어디까지 와있으며, 떠들썩했던 「에너지」 절약 시책들은 또 어찌 되었는가.
정부는 이런 몇가지 기본적인 의문에 대해 종합적인 중간 보고서라도 만들어 봄직하다. 「에너지」 백서의 형태로 그 동안의 노력과 실적을 집약해 보면, 정책적 반성 자료도 되려니와 국민들의 이해를 촉구하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지금 전망으로는 내년부터의 유가 인상은 필연적이다. 서방 소비국들이 어떤 형태로 영향을 미치든간에 적어도 10% 수준 이상은 오르리라는 전망이다. 이는 그것만으로도 1백20억 「달러」 이상의 추가 부담 증가를 의미한다.
그러나 OPEC 내부 사정은 이보다 더 심각하다. 전속력으로 공업화를 추진하는 산유국들로서는 서방 공업국들의 「인플레」가 서방의 유가 부담 못지 않게 고통스러울 수 있다. 「사우디」「이란」「이라크」「알제리」 4개국의 경제 개발 계획만으로도 80년까지 2천6백억「달러」를 투자해야 한다.
주요 수입 「플랜트」와 공산품의 가격 상승률은 지난 3년간 35%를 넘어섰고, 경기 회복이 가속화된 76년에는 더욱 높은 율로 「인플레」가 진전되고 있다. 「로이터」 상품 지수는 올해 10월 현재 전년 동기보다 34·8%, 「파이낸셜·타임스」 지수는 44·2%의 인상률을 나타내고 있다. 25%의 유가 인상을 주장하는 일부 회원국의 주장 근거도 이런데 있다.
이전에 비해 유가 인상에 대한 거부 반응이 상대적으로 준 서방국들도 이런 산유국 측 입장에 어느 정도 체념하고 있는 듯 하다. 서방 전문가들은 새로운 유가 인상폭이 10%선이면 큰 충격 없이 흡수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으며, 미국의 경우 0·6% 내지 0·8%의 추가 「인플레」 요인이 생길 것으로 보고 있다. 「에너지」 소비가 가장 덜 절제되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이만한 정도의 영향은 대수롭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지난번의 대폭 인상으로 1천억「달러」 이상의 국제 수지 적자를 짊어졌던 개발도상국들로서는 인상폭이 10%를 넘을 경우, 대외 채무의 지불 정지 사태가 생길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따라서 개도국으로서는 소위 OPEC의 「특별 기금」 운용을 국제 기구를 통한 자동 「메커니즘」으로 제도화하도록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현명할지도 모른다.
「에너지」 소비 절약 시책에도 불구하고 해마다 우리의 원유 도입량은 늘어가고 있다. 지난해의 20% 증가에 이어 올해에도 1억2천만「배럴」 15억「달러」 어치가 도입될 예정이다. 10%만 올라도 내년에는 최소한 1억5천만「달러」이상의 추가 지출이 불가피하다.
그 뿐인가. 유가 인상의 물가 파급 효과도 이전과는 달리 매우 직접적 이어서 시차가 별로 없다. 종합적인 물가 안정 정책은 물론 개별 요소 가격의 변화에도 더욱 민감하게 대처할 필요성이 증대되었다. 어떤 측면으로 보더라도 내년의 한국 경제는 안정 위주로 펴나갈 수밖에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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