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 받는 공무원 존재 이유 없다" … 문책 개각 불가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3면

박근혜 대통령이 21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세월호 사고에 대해 “매뉴얼이 작동되지 않았다”며 정부의 총체적 부실대응을 질타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박근혜 대통령이 ‘공무원 퇴출’이란 표현을 써가며 세월호 침몰 사고에 대응하는 관료들의 행태를 질책했다. 박 대통령은 21일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면서 “국민이 공무원을 불신하고 책임행정을 못한다고 비난받는다면 책무를 소홀히 한 것이고 그 자리에 있을 존재의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또 “법과 규정을 어기고 매뉴얼을 무시해서 사고 원인을 제공한 사람들과 침몰 과정에서 해야 할 의무를 위반한 사람들, 책임을 방기했거나 불법을 묵인한 사람들, 단계별로 책임 있는 모든 사람에 대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민·형사상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도 했다.

 관료들에 대한 이례적인 질타는 박 대통령이 세월호 사고 대응 과정에서 보인 공무원들의 행태에 크게 실망했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박 대통령은 취임 이후 각 부처의 내부승진을 늘리고 청와대 비서진도 정치권 인사 대신 관료 출신들을 중용했다. 하지만 사고 엿새째를 맞아 공무원들의 안이한 대응와 무능 등 총체적 부실과 난맥상이 드러나자 대대적인 물갈이를 통한 국정쇄신의 필요성을 느낀 것이란 해석이 청와대 주변에서 나오고 있다. 따라서 고강도 문책에 이어 문책성 개각도 불가피할 것이란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 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경쟁이 없는 관료사회가 얼마나 무능하고 무성의·무책임한 집단인가 하는 것을 여실히 보여줬다”며 “청와대 내에서도 이대로는 안 된다는 공감대가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번 사건의 주무부처인 안전행정부와 해양수산부·해양경찰청·군은 지난 16일 사건 발생 초기부터 초동 대응과 생존자 구출, 실종자 수색 등에서 문제점을 노출했다. 범정부적으로 신속 대응에 나서야 할 안행부는 사고 접수 53분 만에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가동했고, 안행부 상황실은 사고 접수 39분이 돼서야 청와대 위기관리센터에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사건을 보고했다. 그러다 보니 사고 뒤 5시간이 지나 구조를 위한 잠수부가 본격 투입됐고, 선체에 남아있을지 모를 생존자를 위한 공기주입은 50시간30분이 지나서야 이뤄졌다.

 사망·실종자 가족을 대하는 데서도 숱한 문제점이 드러났다. 진도체육관에 모여 있는 가족들이 구조작업 현장을 실시간으로 지켜볼 수 있도록 상황판 설치를 요구했지만 묵살되다 박 대통령이 체육관을 다녀간 뒤 2시간 만에 CCTV와 대형 스크린이 설치된 건 대국민 서비스라는 마인드가 실종된 관료사회의 한 단면이다. 이 와중에 송영철 안행부 국장은 지난 20일 사망자 명단이 적힌 상황판 앞에서 실종자 가족과 기념사진을 찍자고 했다가 일벌백계 차원에서 직위해제됐고, 21일 사표가 수리됐다.

 박 대통령은 공무원의 전관예우 관행에도 철퇴를 가할 것을 예고했다. 박 대통령은 “세월호의 선박 수입부터 면허취득, 시설개조, 안전점검과 운항허가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진행과정을 철저히 점검해 책임 소재를 밝혀내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어 ▶20년 된 노후 선박 구입 후 구조변경 과정에서의 안전점검 여부 ▶구명정 46개 중 1개만 펼쳐진 이유 ▶적재중량 허위 기재 경위 등을 직접 열거하며 그 원인을 명백히 밝힐 것을 지시했다. 그러면서 “이런 일들을 선사를 대표하는 이익단체인 해운조합에서 해왔다는 것도 구조적으로 잘못된 것 아니겠느냐”며 “해양수산 관료 출신들이 38년째 해운조합 이사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것 또한 서로 봐주기 식의 비정상적 관행이 고착되어온 것은 아닌지에 대해서도 밝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 부실 대응” 재난매뉴얼 점검 지시=박 대통령은 세월호 구조 과정에서 정부의 위기대응 매뉴얼이 작동하지 않았다는 지적(중앙일보 4월 21일자 5면)과 관련, 정부의 총체적 부실대응을 질타했다. 박 대통령은 “정부의 위기대응 시스템과 초동 대처에 대해 반성해야 한다”며 이같이 지적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 7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매뉴얼 점검을 지시한 걸 거론하며 “이번 사고를 보면 이 지시가 현장에서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는 방증”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세월호) 운항 이전부터 운항과정, 사고발생 이후까지 매뉴얼이 작동되지 않았다”며 “이런 식이라면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각종 사고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신용호·허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