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택 기자의 '불효일기'<11화>아버지는 장어가 먹고 싶었다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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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장어구이를 함께 먹었다. 문득 나 자신이 옛날의 아버지의 모습과 비교가 됐다. 물론 불효자 VS 효자의 구도로 머릿속에 떠오른다. 어릴적 기억들도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쳐 갔다.

아버지는 왼쪽 갈비뼈쪽에 암이 전이됐다. 엄청 아프다고 했다. 그래도 아들과의 점심 데이트에 기분이 좋다고 밝은 표정과 함께 포즈를 취했다. [이현택 기자]

아버지는 장어를 좋아한다. 이전부터 수차례 이야기했던 것이다. 일하다가 점심으로 먹기에는 엄청 비싸긴 하다. 2인분에 7만원 약간 못 된다. 회사 근처 밥은 7000원 정도다. 하지만 부모님에게 모시는 식사비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부모님과 제대로 식사 한다고 치면, 부모님 부부와 내 부부 이렇게 해도 가격이 꽤 나간다.

술 한 잔에 소고기로 한 번 모실 것을 작게, 자주, 여러 차례 함께 스킨십을 하자는 생각으로 최대한 시간을 내서 아버지와 만나고 있다. 항암치료로 입원 중에는 본죽에서 1만원 짜리 하나 사서 나눠 점심으로 같이 먹고, 대구탕 드시면 나는 라면에 햇반 먹고, 좀 맛있는거 먹자고 하시면 고깃집 가서 고기 구워 먹고 그런다.

대개 아버지는 비싼 것 먹자는 말씀 안 하신다. 모든 아버지들이 그럴 것이다. 뻔한 월급의 아들을 안타까워하는 것이 이 시대 아버지들의 마음일 것이다. 그런 아버지에게 예외가 있었다. 장어. 장어 한 번 먹자는 말씀은 몇 번 하셨다. 그러면 먹어야지.

사실 장어는 내가 어릴 적 아버지와 많이 먹었던 음식이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일 것이다. 아버지는 소위 "잘 나갔다". 그런데 돈 버느라 시간이 아예 없었다. 아버지에게 말 한 마디 걸면 만 원짜리 지폐를 주면서 "어, 알아서 사먹어라"는 대답이 나오기 일쑤였다.

그 예외가 아버지와의 장어 식사였을 것이다. 아버지는 내가 영어 단어를 많이 외우거나,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이 보인다 싶으면 주말에 한 차례 정도씩 점심을 먹으러 장어구이집에 갔다. 정말 장어로 배 터지게 먹었다.

아버지는 식도암을 앓고 있다. 식도암의 원인은 주로 흡연과 음주, 뜨거운 음식물, 강한 자극성 음식 등으로 꼽힌다고들 한다. 어릴적 아버지의 모습을 반추해 본다. 공부하기 싫다는 아들은 백반에 고기반찬으로 잘 먹는데, 아버지는 1년에 362일을 일하고 식사도 대충 했다. 서비스업이라 제대로 식사를 할 수도 없다. 짬뽕이나 라면 같은 것도 단골 메뉴였다. 아들은 잘 먹고 잘 지내는 동안, 집의 방파제였던 아버지는 그렇게 속이 타들어갔던 것인가. 죄송했다.

하지만 이 불효자는 아버지에게 그렇게 장어를 사 드릴 여력도 없다. 옛날에 먹듯이 먹으면 30만원은 금세 넘을 것이다. 그래도 맛이라도 보자는 생각에 점심식사를 하러 왔다. 2인분을 시켰다. 뚱뚱한 아들은 그냥 밥에 된장국만 먹기로 했다.

아버지는 소금구이를 좋아한다. 그런데 입맛이 좀 변했다. 요즘에는 단 것도 좋아하신다. 고기도 삼겹살 구이를 주로 좋아했는데, 요새는 양념한 돼지갈비나 광양식 불고기를 더 잘 드신다. 갾입맛이 변했네요갿라고 슬쩍 이야기 하면 갾네가 안 사줘서갿라고 농을 치신다. 나이가 든 아버지는 옛날의 아버지의 근엄함보다는 동네 할아버지의 친구같음으로 다가온다.

소금구이 반 간장구이 반으로 해달라고 했다. 민물장어는 이 날 따라 굽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입맛을 다시는 아버지는 애꿎은 공기밥을 왜 안 주냐는 이야기를 했다. 그왜 이렇게 오래 시간이 걸리는가. 아버지와 뻘줌하게 불판만 보고 있기는 싫어서 대화를 나눴다.

배는 고픈데 장어는 익을 생각을 안 한다. 장어를 기다리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 [이현택 기자]

나: 아, 그거 자꾸 통증이 와서 어떡해요.

아버지: 그래도 너랑 밥 먹으니 통증이 덜 한 것 같구나. 자주 노부를 봉양하거라. (웃음)

나: 죄송합니다.

아버지: 통증이 자꾸 오는데, 잘 참아야지. 그래도 다음 주에는 방사선 치료 들어갈 것 같아.

나: 잘 먹어야 방사선도 버티죠. 5년은 더 사셔야 합니다.

아버지: 장어나 구워라.

10분 쯤 기다렸나, 장어집 사장은 쓸개주 두 잔을 줬다. 아버지는 술을 못하시니 이것은 내 몫이다. 쓸개주와 된장국을 벗삼아 분위기를 내봤다. 아버지는 그게 쓸개주 아니냐면서 반긴다. 하지만 마실 수는 없다. 물론 한 잔 먹는다고 몸에 큰 영향이 있겠느냐만, 암환자나 가족들의 마음은 그렇지 않다.

술 이야기를 했으니 말인데, 나는 아버지와 술을 변변히 마셔본 적은 없다. 어릴 적에는 아버지가 술을 마시는 것이 싫었다. 학원을 하니 밤 늦게 끝나고, 잡무 및 부교재 제작 등으로 새벽에 끝나는 경우도 많아 새벽에 선술집에서 소주를 마시고 오는 날도 꽤 있었다. 어린 마음에 술냄새 풍기면서 "아빠 왔다"라고 말하던 아버지가 싫었다.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 것은 고교 시절부터일 것이다. 아버지가 일하는 옆에서 수능 공부를 하면서다. 아버지는 정말 근면했다. 밤 11시에도 서류를 정리하고, 서류를 정리하면 혹시 모를 사무실 정리를 하고, 그 외에도 관리해야 할 학생들이 있으면 한 명씩 리포트를 쓰던 모습이 기억난다. 나라도 매일 그렇게 근면하게 야근을 해야 한다면 한 잔 생각이 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집에서 TV를 보면서 맥주 한 잔 하기를 좋아했다. 지금 내 습관이기도 하다.

아버지는 양주를 좋아했다. 지금도 그 옛날 스탠드바에서 총각 둘이 국산 양주 한 병씩을 마셨다는 자랑을 하신다. 하지만 그 좋아하는 양주를 먹지는 못하고, 기껏해야 선물로 들어오는 술들도 할아버지에게 드렸다. 할아버지는 야속하게도(?) 아버지에게 한 잔 정도씩만 주고 혼자 다 드셨다. "껄껄껄, 큰 아들이 사줬다"라면서.

그 때 그 할아버지를 부러워했을 지금의 만 62세 아버지에게 옛날 할아버지처럼 양주 한 잔 못 사드린 것이 한으로 남는다. 갓 취업한 26세부터 몇 년은 일하느라 바쁘다는 핑계로, 서른이 되고 보니 아버지가 투병을 하게 됐다는 핑계로 못 사드렸다. 지금은 몸이 쇠약해서 사 드릴 수도 없다. 허언이 아니라 지금이라도 건강하시다면 아버지와 코 삐뚤어지게 양주 대작으로 하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대학 때도, 기자가 된 뒤에도, 나는 왜 아버지의 마음을 몰랐던가.

1시간 쯤 지났나 싶다. 아버지는 꾸준히 밥을 드셨다. 그런데 갑자기 "장어가 탔다. 배도 부르고. 너나 먹어라"면서 남아있는 장어 4점을 내게 주시고는 수저를 내려 놓으셨다. 염치 없이 먹었다. 아버지는 이따가 집에 가서 배고프다고 간식 좀 드시겠지. 지금 이 시간에도 많은 부모들이 "너나 먹어라"면서 수저를 놓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문득 불효자의 가슴이 뭉클하다.

이현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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