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책 속으로] 강아지똥, 구름빵, 마당을 나온 암탉 … 시간을 뛰어넘는 '고전'이 되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8면

10년, 갓난 아기가 초등 3학년이 되는 시간이다. 그 기간 동안 꾸준히 사랑받은 어린이책들이 있다. 중앙일보는 교보문고·예스24와 함께 지난 10년간 유·아동서 부문 누적 베스트셀러를 꼽았다.<표 참조> 양사가 통계 프로그램을 구축한 시점이 이 무렵이다.

 ‘권불십년(權不十年·권력이 10년을 가지못함)’이라지만 어린이책에선 ‘구간(舊刊)이 명간(名刊)’이었다. 30위권에 오른 책들은 평균 9.2년 전에 출간된 것들로 ‘베스트셀러=스테디셀러’였다. 예스24 이지영 도서팀장은 “유아동 분야에서는 오래된 책에 대한 독자들의 사랑이 지극하다. 따끈한 신간보다 검증된 책을 읽히려 하며, 입소문에 의지하는 엄마들의 마음이 작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양사의 베스트셀러 목록은 순위에서 다소 차이가 있을 뿐 대체로 비슷했다. 교보문고의 경우 지난 10년간 온라인이 30%, 오프라인 판매가 70% 비중을 차지했다. 혼자 혹은 자녀와 직접 서점에 와서 고른 책들이 많았다는 이야기다. 인터넷 서점 예스24에서 1∼10위를 차지한 책은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구름빵』 『사과가 쿵!』 『괜찮아』 『마법의 설탕 두 조각』 『책 먹는 여우』 『마당을 나온 암탉』 『강아지똥』 『우리 아빠가 최고야』 『틀려도 괜찮아』 순이었다. 지난 10년간 사랑받은 어린이책들은 일정한 성공 공식을 갖고 있었다.

 ◆가족·모성애·자존감=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어린시절 읽은 문고본을 추억하며 “어린이 문학이란 ‘태어나길 정말 잘했다’고 아이들에게 응원을 보내는 것이다”라는 따스한 정의를 내렸다. 우리 아동서에서도 끊임없이 조명되는 불멸의 가치는 가족·모성애 그리고 자존감이다.

 교보문고·예스24 양사에서 동시에 1위를 차지한 책은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버나뎃 로제티 슈스탁)였다. 미국의 그림책 『I love you through and through』를 동시인이자 출판인인 보물창고 신형건 대표가 번역했다. 그는 “단순명료하게 사랑을 표현하는 책으로 보편적 모성애에 호소하고 있다. 아이들을 위한 책이지만 실은 엄마들의 만족도가 높은 책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구름빵』(백희나), 『우리 엄마』(앤서니 브라운) 또한 개성 있는 캐릭터가 받쳐 주는 가족 이야기다. 『괜찮아』(최숙희), 『틀려도 괜찮아』(마키타 신지), 『칠판 앞에 나가기 싫어』(다니엘 포세트)는 자기 긍정 트렌드를 담고 있다.

 ◆아이는 ‘똥’, 부모는 ‘책’=세대가 바뀌어도 아이들이 좋아하는 소재는 똥이다. 이 중 대표 주자는 독일책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베르너 홀츠바르트)다. 1993년 국내에 출간된 이 책은 지금까지 총 100만부 가량 팔렸고, 요즘도 연간 3만부씩은 꾸준히 나가는 책이다. 난데없이 똥벼락을 맞은 두더지가 똥파리들의 힘을 빌어 범인을 찾는다는 이야기다. 사계절 김진 그림책팀장은 “동물의 생태를 똥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녹였다. 어린이들은 특히 두더지가 복수하는 마지막 장면에 열광한다. 약자인 듯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은 주인공에 감정이입을 한다”고 설명했다.

 국내 대표 똥 이야기인 『강아지똥』(권정생)은 길가의 강아지똥이 거름이 돼 민들레꽃을 피운다는 이야기로, 하찮아 보이는 존재에도 제 몫의 가치가 있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 부모가 좋아하는 소재는 책·도서관이다. 책 읽히려는 열망의 소산이다. 『책 먹는 여우』(프란치스카 비어만), 『책만 보는 바보』(안소영) 등이 그렇다.

 ◆ 교과서·처세서 파워=사교육과 선행 학습을 경험하는 연령이 낮아지는 현실을 반영하듯, 유·아동서 시장에서도 교과서의 영향력이 커졌다. 초·중등 교과서에 가장 자주 인용되는 작품으로 『자전거 도둑』(박완서)과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문열)이 꼽힌다.

 개정 국정 교과서에는 보다 다양한 그림책이 등장한다. 웅진주니어 신혜영 유아그림책팀장은 “스테디셀러 『괜찮아』 『돼지책』은 2011년부터 초등 1학년 교과서에 수록되면서 뒷심을 받았다. 지금까지 각각 40만부, 50만부 가량 판매됐다”고 말했다.

 심지어 『마시멜로 이야기』 『배려』 등 성인 실용서가 어린이용으로 각색되기도 했다. 미취학 아동과 초등생에게까지도 교과서에 나오는 책을 미리 보여주고, 일반 처세서도 읽히는 상황이다.

 출판평론가 한미화씨는 “교과서에 수록되면 관심을 받지만 교과서에서 빠지는 순간 책의 판매량이 확 줄어든다. 그게 우리 어린이책 소비의 또 다른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386 세대=출판계에선 어린이책의 르네상스를 1990년대 후반으로 본다. 386 세대가 결혼해 아이를 낳고, 사회 활동을 하며 ‘내 일’을 하기 시작한 때다. 386 출판인들이 어린이책에 부쩍 관심을 가졌고, 386 소비자들이 지역 독서운동 등을 통해 이에 적극 호응했다. 이때 재발견된 저자들도 있다. 이태준(『엄마마중』)·백석(『개구리네 한솥밥』) 등 월북작가들이 그렇다. 신형건 보물창고 대표는 “내 아이들에게 좋은 책을 읽히자는 열망이 어린이책 시장의 성장을 가져왔다. 그러나 386 프레임, 교과서책 쏠림 현상 등으로 과하게 조명된 책들도 있었다.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은 우리 작가들을 발굴해 어린이책 생태계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게 과제”라고 말했다.

권근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