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불리로 강요된 전술적 후퇴|북괴 유엔결의안 철회의 배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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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북괴는 판문점사건의 대가를 「유엔」에서 지불했다. 「유엔」 관측통들은 북괴가 공산측 결의안을 철회한다는 그들로서는 고통스러운 결정을 내리게된 가장 중요한 이유의 하나는 판문점사건을 보는 세계여론이 북괴의 기대와는 정반대로 나타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북괴는 비동맹회의에다가 시간을 맞추고 「유엔」 총회 개막을 앞두고 판문점사건을 일으킴으로써 세계여론을 향해 미군의 한국주둔으로 인한 전쟁 위험을 선전하고자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북괴의 그런 만행은 미군의 한국주둔을 불가피하게 만들고 있다는 쪽으로 세계여론을 몰고 갔다.
그런 부작용은 이미 비동맹회의에서 일어났다. 북괴의 미군철수요구를 골자로 하는 결의안이 비동맹회의에서 채택된 후에 약20개 회원국이 그 결의안을 일방적이라고 비판하고 그것을 거부하는 성명을 내서 북괴를 긴장시켰다.
그때는 북괴는 벌써 공산측 결의안을 「유엔」사무국에 제출한 뒤였다. 특히 김일성이 판문점사건 때 「스틸웰」 「유엔」군사령관에게 보낸 사과「메시지」와 북괴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의 분할경비를 제안한 것은 북괴결의안을 거부한 일부 비동맹국가들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것으로 보았다.
어떤 「유엔」 소식통에 의하면 공산측 결의안 철회를 먼저 주장한 것은 북괴자신이 아니라 제3세계소속 공동제안국이라고 한다. 「아프리카」와 중동대표들은 「키신저」의 방문외교와 남「아프리카」의 새로운 인종폭동으로 관심의 초점이 되고있는 「아프리카」문제와 이미 「유엔」의 오랜 숙제로 남아 있는 중동문제에 총력을 집중하기 위해서도 결론 없는 한국문제의 토의지양을 바랐을 것은 짐작하기에 어렵지 않다. 북괴는 공동제안국의 그런 권고에 저항할만한 자신이 없었다고 판단된다.
북괴의 입장을 보다 긍정적으로 보아준다면 김일성의 사과서한에서 보인 북괴의 「현실적인 대처」가 이번에 「유엔」에서도 되풀이 됐다고 할 수 있다.
북괴의 경제상태와 국내정치가 북괴후퇴의 원인이라고 보는 소식통도 있다. 그러나 북괴의 갑작스런 결의안 철회를 설명하는데 북괴의 경제상태나 국내정치까지 끌어들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들의 경제상태는 이미 수년 전부터 나빴고 국내정치에 어떤 곡절이 있을 때는 「유엔」에서의 시끄러운 「대결」과 「승리」가 한층 아쉬울 수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금년의 「유엔」에서는 「부전승」을 거둔 셈이다.
지난 4월의 박동진·「키신저」 회담과 지난주의 박·「하비브」회담에서 얻은 합의는 불상정이 바람직하지만 우리가 먼저 주장하지는 말고 「유엔」의 일반추세가 그렇게 돌아가기를 기다리자는 것이었다.
북괴측의 결의안이 철회되자 서방측 결의안이 지체없이 철회된 것은 이 같은 한국의 입장을 반영한 것이다.
「워싱턴·포스트」지는 동구대표들의 말을 인용, 양쪽 결의안이 철회된 배후에 남북한간의 어떤 새로운 움직임이라도 있는 것이 아닌가고 추측을 했다.
그러나 정통한 소식통들은 북괴의 후퇴가 한국과 미국에 전혀 예상 밖의 일이었다고 전했다. 그러니까 그것은 남북한끼리의 접촉의 결과는 아닌 것이 확실하다.
그러나 양측 결의안의 철회는 「유엔」 한국문제토의에 새로운 전환점을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키신저」의 노력으로 표대결 없이 합의성명이 채택된 1973년 총회 이래의 사태의 급전이다. 공산측 결의안의 철회는 서방측 결의안 단독통과의 길을 터놓았다.
그러니 한국은 그런 호기를 이용하지 않고 북괴와 같은 조치를 취하는 여유를 가지고 북괴의 퇴로를 열어주었다. 남북한이 교착상태타개의 실마리를 바란다면 「유엔」에서의 반대되는 두 결의안의 철회가 그런 실마리를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워싱턴=김영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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