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괴의 판문점 도발은 실패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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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다음은 미 하원 외교위 국제기구소위와 국제정치·군사문제소위가 공동 주최한 판문점사건관계 청문회에서 아더·허멜 미 국무성 차관보가 행한 증언을 간추린 것이다. <워싱턴=김영희특파원>
판문점사건이 일어나기 10여일 전인 8월5일 북괴는 미국이 북괴를 침략할 전쟁준비를 완료했다고 주장했다. 북괴성명은 미군철수를 요구하고 통일은 「대민족회의」를 통해서 한국국민들끼리 성취해야 한다고 떼를 썼다. 북괴의 그런 선전은 비동맹회의에서 극치에 이르렀다. 북괴는 올해의 유엔총회에서 외교적 승리를 거두어 한국을 고립시키려고 했다.
판문점사건은 이런 북괴의 강화된 선전공세의 일환으로 일어났다. 사건은 북괴가 주한미군 때문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는 그들의 주장을 밀기 위해서 일으킨 것으로 우리는 알고 있다. 사건에 동원된 북괴경비병의 규모와 공격의 잔학성과 공동경비구역에서까지 유혈사태를 빚기를 서슴지 않은 의도로 보아서 북괴는 분명히 큰 도발을 계획했다.
북괴는 미국이 한반도에서 전쟁을 도발하고 있다는 선전에 필요한 미국의 도발을 노렸다.
동시에 북괴는 미국이 선거를 치르면서 한국방위의 공약을 지킬 것인가를 시험하려 했다.
미국의 반응은 신속하고 단호하고 치밀했다.
미국은 북괴에 우리가 북괴위협에 굴복하지 않고 공동경비구역에서의 권리와 유엔군 경비원의 안전을 지키겠다는 결의를 보였다.
북괴는 우리의 군사적인 반응 앞에서 움찔했다. 그들은 군대에 경계령을 내리고 방어조치를 취했지만 우리의 반응에 군사적인 반응을 할 기미는 보이지 않았고 미류나무를 자른지 몇 시간 후에 김일성은 전례없는 메시지를 유엔군 사령관에게 보냈다.
김일성의 타협적인 메시지는 사건에 대한 책임을 암시적으로 받아들인 것으로 해석된다.
뒤따른 군사정전위 회담에서도 북괴사람들은 그들답지 않게 온순하고 실무적이었으며 김일성의 유감의 뜻을 반복했다.
북괴는 공동경비구역의 분할경비를 제의했다.
이 제의 중에서 중요한 요소의 하나는 공동경비지역의 남쪽에 있는 4개의 북괴초소를 철거한다는 점이다. 북괴는 이 사건으로 혼이 난 것 같다.
그들의 이러한 교훈이 얼마나 지속될는지는 알수 없다. 그러나 북괴는 한반도 안전과 휴전협정을 지키려는 미국의 태세를 확실히 알았다. 그들은 앞으로 그런 사건이 일어나면 그들이 지불할 댓가가 비싸다는 것을 알았다.
세계의 여론은 우리를 지지했다. 특히 주목할만한 것은 중공과 소련이 북괴의 도발에 열성을 보이지 않고 미국의 군사적 대응을 신랄하게 공격하기를 꺼린 사실이다.
판문점사건이 비동맹정상회의의 북괴결의안에 어떤 작용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북괴는 강력한 어조의 결의안을 채택시키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20내지 25개국이 거기에 반대하는 의사표시를 했다. 회원국의 많은 나라가 판문점사건은 미국의 침략성보다는 북괴의 호전성을 과시한 것임을 알았던 것 같다.
판문점사건이 유엔 한국토의에 미칠 영향은 확실치 않다. 우리는 도전을 받아들인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자신의 결의안을 제출했다.
우리는 북괴가 주장하는 미군철수 따위를 거부한다. 우리는 한반도의 안보에 관해서 한국이 제외된 협상을 배격한다.
지난해와 올해 키신저 미 국무장관은 한반도에 관한 4자 회담을 제의했다. 키신저 제안에서 미국은 남북대화 재개추구, 남북교류승인, 남북한 유엔가입, 휴전협정 대안마련을 위한 협상을 지지하는 입장을 다시 확인했다.
판문점사건은 미군의 수준을 결정하는데 영향을 크게 미치지 않을 것이다.
주한미군의 수준은 북괴의 위협과 한국의 자위능력에 따라서 결정된다.
4월8일 하비브 미 국무차관은 『우리는 판문점사건에서 우리가 보인 단호한 태도가 북괴로 하여금 무력통일이라는 신축성 없는 태도를 재고하게 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한국과 미국은 대결이 아니라 협상을 통해서 긴장을 완화하고 항구적 안보체제를 모색할 용기를 갖고있다』고 말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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