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측 한반도문제 결의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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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북괴를 지지하는 23개국이 16일 하오 31차「유엔」 총회안건으로 한국문제에 관한 공산측 결의안을 제안했다.
이번 공산측 결의안의 내용을 보면, 적화통일의 흉계를 지닌 「유엔」 군사해체·미군철수·평화협정체결 등 상투적인 주장 외에도 앞부분에다 몇 개의 기만적 선전문귀를 첨가한 것이 특색이라면 특색이라 할 수 있다. 우선 제1항에는 한국에 있는 미국의 핵무기를 철수하고 군사개입을 중지하라는 적반하장격 요구를 담고있다. 그리고 제2·3항은 「대민족회의」를 소집해서 통일을 논의하자는 상투적인 억지를 늘어놓고 있다.
한마디로 이런 귀절들은 비동맹을 포함한 제3자의 눈을 현혹시키기 위한 속임수에 불과하다.
핵무기를 철수하란 말은 때마침 진행중인 미국대통령 선거전에 편승하자는 것이며, 인도양과 「아세안」일대를 「평화지대화」하자는 비동맹의 주장에 영합하려는 속셈이다.
「대민족회의」 소집운운은 적화통일 의도를 제3자에게 사술적 용어로 미화시켜 그럴싸하게 납득시킴으로써 한국을 마치 「분열주의자」인양 왜곡 선전하고 자기들만이 「통일주의자」인양 가장하려는 흑색선전이다.
그러나 모든 편견을 떨쳐버리고 다시 한번 냉정하게 따져보자.
도대체 미군과 미국의 핵무기가 어떻게 해서 한국에 들어와 있게 되었는가. 북괴가 무단히 38도선을「탱크」로 밀어붙이고 한국에 침략해오기 전에는 한국에 단 한 명의 미군전투원도, 단 한 개의 핵무기도 없지 않았던가. 또 눈을 멀리 「유럽」쪽으로 돌려보자. 동서를 막론하고 「나토」나 그곳의 미국 전술핵무기가 동구를 침략하기 위해 있다고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히려 그런 억지력이 있음으로써 비로소 동서구간의 군사적 균형이 이루어지고, 그 균형 위에서만 비로소 「유럽」의 「데탕트」가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은, 심지어 서구의 공산당까지도 인정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주한미군과 핵무기는 북괴에 의한 제2의 6·25 도발을 억제하고 극동의 소련 핵전력을 중화시키기 위한 이 편의 응당한 견제력일 뿐이다.
오늘날 주한미군은 심지어는 중공의 대소불안감을 경감해주고, 일본의 핵무장을 방지하는 역할까지도 겸하고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군사적 대치의 긴장감을 서서히 완화시키기 위해서라도 휴전 당사자들 또는 다른 유관국들의 동맹을 곁들여서라도 한반도 긴장완화를 논의할 필요성이 생기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것이 바로 서방측 결의안의 핵심적인 발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괴는 자신의 파렴치한 6·25 남침을 포함한 전후 냉전사의 객관적인 유산들을 깡그리 도외시한 채 무턱대고 「유엔」이니 비동맹이니 하는 엉뚱한 무대에서 비현실적인 정치선전만을 일삼고 있다.
그렇다면 북괴와 그 동조자들에게 묻건대, 동서 「유럽」의 「데탕트」나 균형감군론이 어디까지나 『있는 그대로의』 현상에 바탕해서 당사자들의 협의를 통해 추구되었지, 언제 그것을 「유엔」에 가지고 가서 떠들어 댔던가. 마찬가지로 당사자들의 실무적인 토의에 맡기지 않는 한,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긴장완화도 「유엔」에서 백번 떠들어보았자 아무런 소용이 없는 일이다.
「유럽」의 「데탕트」나 동북아의 긴장완화는 모두가 똑같은 원리에 따를 수밖엔 없는 것이 오늘의 국제현실이다. 그것은 직접 당사자들이 실무적으로 마주 앉아 있는 그대로의 현상을 인정하고, 그 토대 위에서 상호불가침·무력불행사·내정부간섭의 「과정으로서의 통일」을 착실히 단계적으로 밟아가는 방식이다.
공산측이 만약 그러한 현실적인 방안을 외면한 채 오직 선전적 효과만을 노려 계속 「유엔」에서의 표대결을 고집한다면 우리로서도 정정당당한 대안을 내걸고 대결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보다 더 바람직한 일은 소·중공·좌경국가들이 「유엔」에서의 비생산적인 논쟁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당사자간의 대화를 통한 현실적인 긴장완화』를 북괴에 요구하는 것임을 지적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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