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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음해 풍조 추방을 위한 캠페인|음해의 유형과 사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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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시기·비방·모함·중상·모략의 음해 행위는 그 형태야 어떻든 모두가 인간 관계의 분해를 일으키고 불신과 악의를 조장하는 사회의 병리 현상임이 틀림없다.
가난하게 살아온 민족으로서 남을 헐뜯는 행위가 생존을 위한 고육책이었는지.
우리 사회는 음해 행위의 경쟁 무대이기라도 한 것처럼 얽히고 설킨 모함의 비리를 너무도 많이 노정 시켜 왔다.
일제하 동족끼리의 모함은 그만 두고라도 해방 후 짧은 역사의 뒤안길에서도 서로를 유린하는 「매터도」는 도처에서 극성을 부렸다.
특히 반공을 숙명으로 살아야 하는 나라 사정에서 「매카시즘」이 「라이벌」 타도의 무기로 등장하기도 했다.
5·15 정부통령 선거 때의 일. 야당인 민주당의 신익희·장면 후보가 「못 살겠다 갈아 보자」는 구호를 외치며 전국을 누비고 있을 때 민주당 당사로 중공 화폐를 동봉한 괴문서가 우송됐다.
「왕초산」이란 이름이 적힌 이 문서에는 「동봉한 중공 돈을 인천의 화교들에게 바꿔 선거 비용에 보태 쓰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선거의 향방이 예측을 불허할 만큼 긴박해지자 초조해진 반대측이 정적을 「빨갱이」로 몰아 쓰러뜨리기 위해 음모를 꾸몄던 것.
이 같은 정가의 모략 전술은 「뉴델리」사건· 충성심 「테스트」·「사꾸라」 논쟁 등으로 그칠 줄 모르는 악순환을 거듭했고 사회의 고질적 병폐로 뿌리깊이 토착화 됐다.
48년 「런던·을림픽」에 출전하려던 육상 감독 김혁진 출국 저지 사건은 치사한 모함극의 대표적 「케이스」의 하나다.
선수단 파견을 둘러싸고 파벌 싸움을 벌였던 당시 육상 연맹에서 김씨가 파견 선수단 감독으로 선출되자 「라이벌」이었던 S씨가 탈락한 앙심으로 특무대에 김씨를 공산당이라고 고자질했다.
이 때문에 김씨는 여의도 공항에서 비행기에까지 올랐다가 특무대로 연행되는 사태를 빚었다.
나중에야 김씨의 결백이 밝혀졌지만 그때는 이미 「올림픽」이 끝난 뒤였다.
보복심에서 남을 헐뜯고 사인을 이유로 경쟁 상대자를 무고 하는 풍토는 최근에는 서정 쇄신에 따른 부조리 제거 작업에 편승, 더욱 두드러졌다.
수사 기관을 비롯한 행정 관서에는 진정과 투서의 홍수 상태를 이루었고 이러한 것들의 대부분은 악의에 찬 중상 모략으로 밝혀지고 있다.
모략 투서의 희생자 가운데서도 전 포항시장 배수강씨의 경우를 지나칠 수 없다.
배씨는 69년11월11일 「포항 죽도동 시장 부지를 부정 불하했다」는 내용의 투서로 현직시장의 신분으로 검찰에 전격 구속 됐었다. 그는 외부의 압력을 물리치고 시장 부지를 정당하게 불하했다가 압력을 가했던 자들로부터 모략을 당한 것이다. 서울로 압송된 배씨는 결백을 주장했으나 허사였다. 모략이 어찌나 철저했던지 70년5월8일 서울지법에서는 배씨에게 징역 3년의 유죄 선고를 내렸다.
30년 공직 생활에 오점을 남기게 된 배씨는 억울하게 더럽혀진 명예를 되찾기 위해 필사의 항변을 했다. 집을 팔고 친지들에게 빚까지 내어 항고를 제기했다.
시장 불하 가격은 당시 경찰서장·시 자문위원·세무서장·감정 은행장·부동산 소개 업자 대표 등으로 구성된 심사위원에서 결정한 것이었다. 배씨는 매입자들로부터 차 한잔 얻어먹은 적도 없었다.
4년여에 걸친 피눈물 나는 법정 투쟁 끝에 배씨는 마침내 73년10월10일 서울고법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고 74년7월17일 대법원에서까지 무죄 판결이 내려져 출옥했다. 5년간에 걸친 억울한 옥살이였다. 끈질긴 집념으로 명예를 되찾은 배씨는 74년8월1일 복직이 됐다.
그러나 법정 투쟁을 벌이느라고 가산을 모두 날린데다 오랜 옥고로 얻은 신병이 악화 돼 배씨는 복직 2개월만에 기어이 숨을 거두고 말았다.
임종시 배씨는 『나의 결백이 밝혀졌으니 죽어도 한이 없다』는 한마디를 남기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러나 한장의 거짓 투서로 인생을 망친 한 청렴했던 공복의 억울한 죽음 앞에 가족과 친지들은 땅을 치며 통곡해야 했다.
모함을 일삼는 자들은 거의가 광적인 편집성을 지닌 일종의 성격 파탄자들로 「누가 죽느냐 두고 보자」는 식으로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극단적인 수법을 쓰는 것이 특징적 양상이다.
상대를 헐뜯기 위해서는 사실의 진위는 차치하고 미주알 고주알 닥치는대로 적시하고 말썽을 일으켜 상대방을 견디지 못하게 만든다.
얼마 전 서울 시경에는 함께 자란 친구의 재산을 가로채려고 검찰·경찰 등 14개 수사 기관에 무려 4년 동안이나 끈질기게 모함 진정을 낸 백모 (43)가 구속됐다.
백은 친구 이모씨 (39)가 아버지로부터 상속받은 싯가 5억원 상당의 임야를 가로채기로 작정하고 각종 관계 서류를 위조한 뒤 도리어 이씨의 아버지가 백의 땅을 편취한 뒤 월북한 것처럼 허위 진정서를 꾸며 각종 수사 기관에 보내기 시작했다.
백은 이것도 모자랐던지 나중에는 『이씨는 월북한 아버지가 내려보낸 간첩과 접선하고 있다』는 거짓 투서를 했다. 이 무고 행위로 14개 수사 기관이 30개월 동안 연 6백명의 인력을 동원, 수사를 해야 했다.
이씨는 누명이 벗어질 때까지 2개월 동안이나 수사 기관에 불려 다니며 조사를 받으며 갖은 곤욕을 치렀다.
백은 경찰에서 「함께 자란 친구가 일약 거부가 되는 것을 보고 배가 아팠다. 정 안될 경우에는 그가 직장에서 쫓겨나는 꼴이라도 보고 싶었다』고 스스럼없이 말했다.
이처럼 모함은 스스로의 노력에 의하지 않고 안이한 방법으로 남이 애써 쌓은 고지를 차지하려는 비정상적인 이익 추구욕에서 발로되는 것이지만 그 귀결은 피차가 함께 망하는 파괴적 소행이다.
기업 내부의 주도권을 차지하기 위해 비전 투구와도 같은 모함전을 벌이다 기업 자체의 파탄까지 몰고 온 호남 전기나 풍전 상사의 경우가 바로 그 같은 교훈을 말해주고 있다. <금창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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