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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월요일] 한정식에 스테이크 … 여기는 '장진우 골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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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서울 용산구 회나무로 13가길’. 하지만 이 길은 요즘 행정구역상 명칭보다 ‘장진우 골목’으로 더 유명하다. 3년 전 ‘장진우 식당’과 ‘장진우 다방’을 시작으로 독특한 컨셉트의 음식점 8개가 골목에 들어섰다. 공통점이라면 모두 28세 청년 장진우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해 그의 지휘로 운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청년 장진우의 자신만만 엉뚱 발랄 ‘골목 점령기’를 들어봤다.

너 ‘장진우 식당’ 가봤니?

“조금만 걸어가면 남산, 자전거로 달리면 바로 한강이 나오죠. 서울시내 한복판에 이렇게 자연과 가까운 동네가 있을까요?”

 뜨거운 물도 안 나오는 방배동 지하 스튜디오에서 먹고 자고 일하던 사진가 장진우가 드디어 지상에 방 한 칸을 마련한 동네가 바로 이곳, 녹사평역에서 하얏트호텔에 이르는 경리단길 뒷골목의 한적한 주택가 ‘서울 용산구 회나무로 13가길’이다. 대기업과 일하고 보수를 받은 날 햇살이 잘 들어오는 개인용 서재 공간도 한 칸 얻었다.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35만원짜리 1층 공간이다.

 “요리를 전공한 건 아닌데 만드는 걸 좋아해 구석에 싱크대를 들여놨죠. 놀러 오는 친구들에게 음식을 만들어줬더니 맛있다면서 다들 ‘장진우 식당’이라고 부르더군요.”

 10평(33㎡) 남짓한 ‘장진우 식당’은 ‘원 테이블 식당’이다. 실내엔 8명이 앉을 수 있는 커다란 테이블이 전부다. 저녁식사는 주로 예약제다. 하루에 한 팀. 식당을 통째로 빌리는 돈은 40만원이다. 1인당 두 종류의 전채요리와 빵, 생선요리, 쇠고기 스테이크, 그리고 케이크와 차를 먹고 마실 수 있다. 2명이면 한 사람당 한 끼에 20만원, 8명이면 5만원짜리 식사인 셈이다. 어딘가 비합리적인 계산법 같은데 손님들은 불만이 없다.

 장진우는 식당이 안정되면서 옆에 ‘장진우 다방’을 만들었다. 그리고 3년간 총 6개의 음식점을 오픈했다. 식당과 다방을 제외하곤 모두 동업 형태인데 재밌는 건 그 동업자들이 모두 그의 음식점 단골이라는 점이다.

 “홍보마케팅회사 인디케이트의 기획실장 이동욱 형님과 영화미술감독 이태훈 형님은 장진우 식당 단골손님이었는데 워낙 술을 좋아하고 상상력이 풍부해 ‘감옥’ 같은 선술집을 만들어 보자고 의기투합한 게 ‘방범포차’죠.”

 다방에서 팔던 타르트를 제일 많이 사가던 단골 고객과 손잡고 문을 연 곳은 빵집 ‘프랭크’다.

무궁무진 샘솟는 500개의 아이디어

① 장진우 식당. 8명 좌석의 큰 테이블 하나로 운영되는 ‘원 테이블 식당’이다. ② 방범포차. ‘감옥’ 컨셉트로 꾸민 실내 포장마차. 요리사들이 철창 안에서 음식을 만든다. ③ 경성스테이크. 조선 개화기 당시 모던 식당이 컨셉트. 한정식 기본 상차림에 서양식 스테이크를 메인 요리로 제공. ④ 문오리. 제주도에서 찾아낸 ‘문어+오리고기’ 전골요리 식당.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에 관한 한 머릿속에 500개의 아이디어를 쟁여놨다는 장진우. 그의 창의력은 시도 때도 없이 샘솟는다.

 “제주도에 놀러갔다가 예쁜 아가씨를 만났어요. 꼬셔 보려고 한 달을 제주도에 머물렀죠(웃음). 그때 문어와 오리고기를 함께 끓이는 전골 식당을 발견했는데 맛이 기가 막혔어요. 결국 아가씨보다 요리에 집중했고 그게 바로 식당 ‘문오리’의 아이디어가 됐죠.”

 제주도가 컨셉트인 만큼 문오리에선 술도 제주도 소주 ‘한라산’만 판다. “냉장고에 넣지 않은 걸로 주세요” 하면 종업원들은 다 알아듣는다.

 1주일 전 문을 연 ‘경성 스테이크’는 조선근대사 책을 읽다가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서양 선교사에게 ‘스테이크’라는 걸 알게 된 조선 선비들은 어떻게 식사를 했을까. “테이블에 차려지긴 하지만 기본은 평상시 먹던 밥, 국, 김치, 반찬 서너 가지였겠죠? 메인 요리는 구절판처럼 가운데 두고.” 경성 스테이크 메뉴의 기본이 한정식인 것은 이런 이유다. 메인 요리는 서양식으로 구운 채끝·안심·립 아이 스테이크 중 하나를 고르는 방식이다.

나는 이 골목에서 내 멋대로 산다

25세 무렵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한 달 정도 산 적이 있다. 운하를 따라 거미줄처럼 들어선 골목을 하루 종일 돌아다니다 어떤 풍경 하나를 만났다. “좁은 골목에 갤러리, 빵집, 카페, 레코드가게, 기념품 상점, 식당이 옹기종기 들어섰는데 알고 보니 다 어려서부터 알고 지낸 동네 친구들이 하는 거래요. 밤이면 자기들끼리 모여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면서 파티를 하죠. 나같이 지나가던 외지인과도 스스럼없이 어울리고.”

빵집 ‘프랭크’ 인기 상품 ‘무지개 롤빵’.

 ‘제2의 고향’이라 부를 만큼 마음에 쏙 드는 이 골목을 ‘내가 가지겠다’고 생각한 것도 이 때문이다.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골목의 스타일을 만들고 외지인, 현지 주민이 함께 즐기는 것. 이게 장진우의 목표다.

 “그래서 더 악착같이 이 골목에 ‘장진우 표’ 음식점들을 내는 거예요. 권리금 장사 하겠다고 몰려드는 부동산 하이에나, 덩치만 큰 프랜차이즈가 들어오기 시작하면 이 골목은 끝이거든요.”

 다행히 골목 안 다른 상점들은 모두 장진우와 뜻이 같아서 형제처럼, 친구처럼 지낸다. 회의도 함께 하고 벼룩시장도 함께 열면서. 그래서 오늘도 장진우는 하루 종일 골목에서 일하고 골목에서 논다.

 “아침에 일어나면 일단 ‘프랭크’에 가서 빵을 사고 커피를 마시죠. ‘레코드잇슈’에 들러 음악을 듣다가 인테리어 사무실에서 일을 하죠. ‘문오리’에서 동네 할머니들과 점심을 먹고 ‘카롱 카롱’에서 디저트로 마카롱을 먹어요. 저녁엔 ‘그랑블루’에서 재즈공연을 보면서 저녁을 먹고 밤에는 동네 청년·동업자들과 ‘방범포차’에서 술을 마셔요. 이 모든 걸 이 골목 안에서 다 할 수 있다니 정말 멋지지 않나요?”

글=서정민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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