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신약개발 위한 사회·경제적 환경 조성해야 제약 강국 도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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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중서부에 위치한 중소 도시인 인디애나폴리스. 불과 10여 년 만에 생명공학 도시로 탈바꿈했다. 본래 이 지역은 옥수수 농업과 자동차 생산으로 유명했다. 하지만 디트로이트로 자동차 공장이 이전하면서 도시경제가 흔들거렸다. 죽어가는 경제를 위해 새로운 활로가 필요했다. 이때 제약·바이오산업이 구원투수로 등장했다.

이를 진두지휘한 인물이 현재 일라이 릴리 대외협력부 총괄 수석부회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바튼 피터슨(사진)이다. 그가 지난달 27일 한국을 방문했다. 한국 제약산업 발전 방안을 조언하기 위해서다. 그는 2000년부터 2007년까지 미국 인디애나폴리스 시장을 두 차례 연임하면서 이 지역을 생명과학의 메카로 만들었다. 피터슨 수석 부사장을 만나 글로벌 제약산업 현황과 제약강국 도약 솔루션 에코시스템에 대해 들었다.

한국 제약산업은 성장 가능성이 크다. 탄탄한 제약산업·임상시험 인프라와 풍부한 인적자원 덕분이다. 제약 강국에 필수적인 기초체력은 튼튼하다는 의미다. 정부 역시 제약산업을 국가 신성장 동력으로 지정하고, 2020년 세계 7대 제약 강국으로 도약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제약산업이 넘어야 할 과제는 많다.

중요한 것은 지속적인 연구개발과 투자다. 피터슨 수석 부사장은 “혁신 신약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평균 10년 이상의 장기간 연구개발과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다”며 “한국 제약산업이 한 단계 도약하려면 제약산업 에코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약산업 에코시스템의 핵심은 혁신 신약 개발을 촉진하는 사회·경제적 환경 조성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정부의 역할이다. 신약 개발 투자에 긍정적인 정책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벤처자금을 유치하고 조세지원도 활성화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기초과학 분야의 연구를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 그는 “기초과학 연구는 신약을 상용화·제품화하는 동력”이라고 말했다.

혁신 신약에 대한 가치를 인정하는 것도 중요하다. 신약 개발 초기에는 실패할 확률이 95%다. 그동안 비용도 크게 증가했다. 1970년대에는 신약 하나를 개발하는데 1억4000만 달러가 필요했다면, 2000년대에는 약 9배 늘어난 12억 달러나 든다. 신약 개발 연구비가 급증하면서 실패 위험이 크고 연구기간이 긴 제약산업 투자를 꺼린다. 피터슨 수석 부사장은 “혁신적인 투자에는 적절한 보상이 뒤따라야 한다”며 “한국은 혁신성을 강조하는 환경 조성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것이 의약품 약값 정책이다.

한국은 혁신 신약과 제네릭(복제약) 간 약값 차이가 크지 않다. 일부 혁신 신약은 시장에 출시된 지 4년 만에 특허 도전에 직면하기도 한다. 혁신 신약보다 복제약 개발에 주력하는 산업환경이라는 지적이다. 그는 “인디애나폴리스는 혁신성을 인정하는 제약산업 에코시스템 정책으로 신규 신약 개발 투자를 유치했다”며 “이는 혁신 신약 개발로 이어져 지역경제 성장에 기여했다”고 덧붙였다. 글로벌 신약의 1년 매출은 10조원이 넘는다.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정도로 폭발적인 성장 기회를 제공한다.

기초·임상연구 간 연계도 강화해야 한다. 글로벌 제약기업과 기술교류를 통해서다. 최근 글로벌 제약기업은 국내 임상 연구를 확대하고 있다. 특히 혁신 신약 개발 단계의 초기 임상에 한국 연구진이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 피터슨 수석 부사장은 “릴리는 한국이 글로벌 제약 강국으로 도약하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권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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