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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택 기자의 '불효일기'<7화>암환자는 왜 잔소리가 많은가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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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아버지는 점심을 먹다가 내게 잔소리를 했다. 허리가 아프다는 내게 “젊은데 왜 아프냐” “운동 좀 해라” “식습관을 바꿔라” 등의 잔소리를 했다. [이현택 기자]

아버지는 잔소리가 많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게 아니라 어머니도 그렇게 생각한다. 가끔 집에서 식사를 하면 아버지의 잔소리는 속사포처럼 쏟아진다. 내게는 왜 운동을 안 하느냐, 술자리를 줄여라, 청소는 잘 하고 있느냐, 깔끔하지 못해서 마누라한테 구박이나 당하겠다 등 다양한 레퍼토리가 있다. 물론 어머니에게도 잔소리가 쏟아진다. 어머니의 잔소리 체감 정도는 내가 느끼는 것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이야기한다. "네 아버지 잔소리 때문에 미치겠어. 살아생전 네 할아버지를 꼭 닮은 것 같아"라고 말이다. 물론 어머니는 할아버지와 사이가 아주 좋았다. 일하느라 바쁘다며 가정에 있던 시간이 자는 시간 정도였던 아버지 대신, 어머니는 할아버지에게 아들 노릇을 많이 해줬다. 2005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는 2003년까지만해도 매주 한 차례씩 "에미야"라며 어머니에게 대작을 하자고 했고, 한 잔 하시면 기분 좋게 주무시고는 했었다. 하지만 젊은 시절 시아버지의 훈계와 지금 남편의 잔소리는 느끼는 바가 다를 것이다.

정말 그런가. 아버지는 암 투병으로 인해 잔소리가 늘었을까. 인터넷에 올라오는 질문처럼 아버지에게 물어봤다. "암환자는 잔소리가 많아지느냐"고 말이다. 아버지의 이야기는 오히려 다르다. 밤 10시, 잠이 오지 않는다는 아버지에게 전화해 물어봤다. 신문에서 잘 쓰는 일문일답 스타일로 정리해 봤다.

Q. 암환자는 잔소리가 많아지나.
"무슨 소리. 오히려 말 할 사람이 적어서 우울증에 걸릴 수 있다. 암환자 중에 우울증이 많다는 이야기를 알겠던데. 낮에 TV보다가 지루해서 끄면, 어디 말할 데가 없어요. 전화라도 안 걸어주면 진짜 입을 쓸 곳이 없더라고. 전화 자주 걸면 또 일하는데 방해하는 것 같잖아."

Q. 어머니는 잔소리가 늘었다고 하는데.
"무슨 소리, 구박 받을까봐 오히려 말을 삼가는 것이 암환자의 특성이다. 잔소리를 많이 하면 가족들한테 구박받을 수 있다. 그래서 말을 조심하게 된다. 그러면 구박을 안하게 되니깐 말야."

하지만 아버지는 잔소리가 많다. 실제로 많다. 아프기 전 아버지의 화법과 지금의 화법을 비교해 보면, 잔소리가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것을 금세 파악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아버지는 오히려 말을 덜 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내놨다. 그 간극은 왜 생기는 것일까. 나름대로 정리해 봤다.

# 이유1. 대화할 사람의 폭이 좁아진다.
# 이유2. 대화의 주제가 적어진다.
# 이유3. 타인이 들어주는 대화의 절대량이 적어진다.

우선 대화할 사람의 폭이 좁아지는 것은 생활의 변화로 인한 것이다. 직장을 다니던, 자영업을 하던 간에 집 밖에서 '업무'로 만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암이 심해지면서 생업을 포기하게 되고, 이로 인해 업무로 보는 사람들과의 만남과 통화는 단절된다. (다행히 아버지에게는 이야기를 나누는 동창들이 있다. 그 친구분들 덕분에 옛 추억, 사는 얘기, 같이 나이를 먹는 것에 대한 생각 등을 나누는 것 같다. 고마운 분들이다.)

대화할 사람만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대화의 주제도 줄어든다. 암에 걸린 이후에는 대화의 절반 정도가 치료 아니면 음식 이야기다. 특히나 처음 10분 정도는 어제 오늘 무엇을 먹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사실 먹는 이야기는 안 할 수가 없다. 술도 못 먹고, 외부 활동도 없고, 만나는 사람도 적은데다, 항암제로 인해 입맛이 예민해지기 때문이다. 물론 상태가 더 악화되면 음식마저도 못 먹게 되거나 입맛이 없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치료 이야기와 먹는 이야기로 계속 말을 하게 되면, 듣는 사람이 집중을 잘 못하게 된다. 치료 이야기도 한두 번이지, 그 이후로 집중해서 관심을 갖는 것은 쉽지 않다.

나 역시 아버지가 말씀하시는데 다른 생각을 하거나, 휴대전화에 집중하다가 "아차"하고 다시 이야기에 몰입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다행히 나는 음식 이야기를 좋아해서 별로 부담은 없다. 가끔은 먹고 싶은 음식 이야기를 10분 정도 하시면, 그 자리에서 사먹기도 한다. 물론 '한우 꽃등심' 같은 것을 말씀하시면 "앙대요" 한 번 해 드려야 하는 것이고 말이다. (돈만 충분하면 매일 한우로 모시고 싶은게 불효자의 솔직한 심정이기는 하다.)

한 사람이 자신의 말을 들어줄 수 있는 능력(capacity)도 줄어든다. 이유2와 비슷한 맥락이다. 아프기 전에는 매일 돌아가는 사업 이야기, 관심 갖고 지켜보던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ㆍ스포츠 등 제반 이슈, 친척들의 근황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서 말을 한다. 듣는 사람 입장에서도 재밌게 받아들인다. 하지만 늘 "그 나물에 그 밥" 같은 대화라면 10분 들어줄 대화가, 5분 정도로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잔소리다. 좀 열심히 들어달라고

이런 이유로 아버지는 말할 거리가 고갈되기 쉽다. 그러면 바로 대화 상대방인 내 이야기로 돌아서는 것이다. 요즘 일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 신혼생활에 대한 이야기, 건강 이야기, 글 쓰는 것에 대한 이야기 등을 물어본다.

특히나 계획을 중요시하는 아버지는 앞으로 나의 계획에 대해 1주일 단위, 1개월 단위, 3개월, 1년, 5년 단위별로 물어본다. 장기적인 미션과 목표, 그것을 이루기 위한 일상의 노력 등을 묻기도 한다. 질문을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잔소리라고 생각될 수도 있는 것이다.

아들 직업이 기자라고, 시사이슈에 대해서는 꼭 물어보신다. 잘 모르는 주제에 대해서 물어보기라도 하면 진땀이 난다. 왜 모르냐고 하면, "취재해 올게요"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 역시 잔소리처럼 느껴질 수 있다.

때로는 그런 생각도 한다. 그냥 신문을 좀 보시지 굳이 구두로 물어보시느냐고 말이다. 이를 예상이라도 한듯, 아버지는 이런 이야기를 한다. "처음에는 병실이나 집에서 책을 봤지. 신문도 많이 보고. 그런데 글자를 읽는 게 힘이 드는 거야. 그래서 여행책을 보기 시작했지. 그것도 힘이 들어. 그래서 사진이 많은 여행책을 보거나 TV를 많이 봐. 눈에 쉽게 들어 오거든. 물론 책 열심히 읽는 환자도 있어." 지난번 병실에서 열심히 성경을 읽던 한 동료 환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사실 결론은 우리 모두가 다 아는 이야기다. 잔소리는 암환자의 소통창구다. 직업 현장에서 일을 하느라 바쁘던 사람이 갑자기 암환자가 됐다고 잔소리를 속사포처럼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평소에 하던 말이 100인데, 실제로 말을 할 수 있는 양이 10 정도밖에 안 되고, 그 10 마저도 말할 거리가 별로 없으니 답답한 것이 암환자의 마음이다. 그래서 가족들이 많이 들어줘야 한다.

결혼을 하면 가족이 하나 늘어나니, 잔소리를 듣는 것도 1/2에서 1/3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만의 착각이었다. 아버지는 적어도 며느리 앞에서는 배우 안성기 같은 시아버지가 되고 싶은지 꽤 점잖게 말씀하신다.

*ps. 비슷한 맥락으로 암병동에 있는 간호사들은 넉살이 좋다. 암환자들의 이야기에 대해 잘 들어주는 편이고, 가족처럼 이야기 해 준다. 참 고마운 분들이다. 하지만 넉살을 빌미로 아버지뻘인 환자들에게 반말을 하는 일부 간호사들에 대해서는 아직 좀 불편하다.

이현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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