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오륜 첫 영광...양정모의 어제와 오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정모는 이젠 아버지 양승묵씨 말대로 양씨 집안의 아들이 아닌 대한의 아들이 됐다. 그는 경기할 땐 투지의 화신인양 마치 돌진하는 맹수를 방불케 한다.
그러나 경기장을 떠나면 다부진 덩치에 걸맞지 않게 성격은 섬세하고 온순하다. 정모는 오는 17일 군에 입대하게 돼 있다.
그동안 군입대 문제로 세 번이나 연기하는 등 말썽을 빚었으나 부산병무청장 장재준씨 의 배려로 이번「몬트리올」대회에 다녀와 입대하기로 한 것이다. 그는「몬트리올」로 떠나기 직전 휴가로 집에 다니러 오는 동안 장 청장을 찾아 인사하는걸 잊지 않았다.『기어이 우승 뒤 가뿐한 마음으로 입영하겠습니다』고 고마움을 감사할 줄 아는 예의가 깍듯한 모범선수였다는 것이 동아대시절의「코치」오정룡씨 의 얘기다.
또 그의 직장 조폐공사의 신상식「코치」는『정모는 맥주2병 정도는 거뜬히 해치우나 그 이상은 절제를 하며 성격이 붙임성이 있어 여자친구도 있기도 한데 깊이 빠지는 일이 없었다』고 말한다. 그의 집에 있는 두 권의「노트」는 보는 이를 더욱 감탄케 한다. 하나는 자신이 끄적인 시를 비롯하여 자신과 친구들이 돌려가며 썼는데「헤르만·헤세」의 것 등 유명한 시들이 많이 담겨져 있다.
또 하나는 선수촌서의 일과를 적은 일기장이다.「시(시)」라고 겉장에 쓰인「노트」엔 자신과 친구 그리고 유명한 시들이 낙서처럼 끄적여 있다.
『밤. 적막이 우거진 고독에 젖은 밤. 외로운 밤에 잠 못 이루는 나에게 어디선지 멀리 들려오는 막차의 기적소리만 나의 유일한 벗이 될 뿐.
그 누구도 나의 쓸쓸한 마음의 창문을 두드리는 사람 없고 늦가을의 바람이 내 님인 듯 오셨군.
님은 지금쯤 무엇을 하고 있을까? 아름다운 꿈의 세계로 갔을까? 아니아니 나를 생각하느라고 단잠을 이를 것이다. 1971년 5월 27일.』
이때가 동아대 체육과 1년 생으로 동경세계「주니어」선수권 대회에 출전, 자유형「페더」급2위·「그레코로만」형 3위를 각각 차지한 직후다. 이 글에서 양 선수의 공허한 마음을 엿 볼 수 있다.
또 다음과 같은 작자미상의 외국인 시에서는 세계정상을 내다보며 인내와 극기를 좌우명으로 하는 정모의 웅지를 엿 볼 수 있다.『20세기「터널」공사장. 소리가 들린다.
언젠가는 훤히 트일「터널」공사장. 그러나 지금은 다만 소리뿐.(중략)다만 그날의 영광을 위해 암벽을 판다. 피를 빠는 세월이, 뼈를 깎는 세월이 우리를 놓칠망정 마지막 피가 들 때까지는 물러설 줄. 모르는 강철의 마음이 묶여진 곳.
여기는 20세기「터널」공사장.』지난해9월「민스크」세계선수권 대회에 출전하기 직전 선수촌서 훈련하던 중 적어놓은 시로 그의 마음 자세를 엿볼 수 있다.
독서 외에도 그는 노래를 좋아해『신라의 달밤』을 비롯해 최근 유행된『한번쯤』등「팝 송」을 즐겨 불렀다는 동료 선수들의 얘기다. 또 식성은 뭐든지 다 잘먹으나 육류는 체중 조절 때문에 아예 엄두를 내지 않았다고.
그러나 짬뽕 같은 국수류는 무척 즐겼다는 신「코치」의 말이다. 체중 경기에 있어「챔피언」에의 길이 얼마나 힘들다는 것을 인간의 욕구인 식사 문제에서도 알수 있겠다.<이민우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