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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록담의 등산 공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한라산 산정에 있는 백록담은 천고의 벽수가 고요히 넘치는 아름다운 못이요, 큰비가 내리면 교룡이 등천한다는 전설마저 있는 신비스런 호수다.
못 일대에는 분재로 유명한 진백이 무성하고 봄이면 산을 붉게 물들이는 철쭉이 무더기로 피어나 등산객들이 철쭉제를 지내기도 하는 명소임은 너무나도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처럼 아름다운 백록담이 최근 부쩍 늘어난 등산객과 일부 등산객들의 몰지각한 행위로 인해 매몰돼가고 있다는 것이다.
한라산의 자연 보존 실태를 조사한 국립공원 협회와 자연보존 협회 보고에 따르면 이 상태로 내버려두면 등산객들의 출입 때문에 대량의 토사가 퇴적하여 10년 안에 못이 완전 매몰되고 말 것이라고 우려를 표시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경고는 이미 오래 전부터 있어 왔는데도 지금껏 아무런 단속이나 정화 대책이 세워지지 않았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건설부가 작년 1억 원을 들여 만들어 놓은 3개의 대피소는 이젠 대피소가 아니라 쓰레기장으로 변해버렸고 그 일대는 술병·깡통·「비닐」조각·휴지·배설물·음식물찌꺼기 더미가 쌓여 악취가 코를 찌르고 파리 떼들이 우글거린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대피소에 숙박하는 등산객들 중에는 철쭉·구상나무 등을 불쏘시개로 마구 갈라 태워 버리거나 뿌리째 뽑아 가는 사례마저 있어 산은 황폐해 질대로 황폐해 가고 있다는 것이다.
매몰돼 가고 있는 백록담 주변 역시 쓰레기장이 됐고, 호수 물은 오물 처리장으로 탈바꿈하고 말았다니 이보다 더 기가 찰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이 같은 일은 어찌 한라산이나 백록담뿐이겠는가. 모든 산이란 산, 계곡이란 계곡치고서 오염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국립 공원인 설악산의 경우, 「에델바이스」와 만병초·당귀 등의 희귀초나 약초가 모조리 뽑혀 버렸고, 지리산의 불로천을 비롯한 여러 천연 샘은 세균으로 오염돼 마실 수 없게 돼 버렸다. 또 속리산의 마애여래상 주변의 바위와 추래 암벽에는 「페인트」로 이름들을 커다랗게 써놓아 보는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해주고 있다.
산의 기화요초, 묘하게 생긴 돌들은 등산객들에 의해 수난을 겪게 마련이며 이런 등산 공해는 서울 주변의 북한·도봉·수락·관악산의 경우 가장 심하며, 최악의 상태에 놓여있다.
등산은 비용이 적게 드는 건전한 「레크리에이션」이요, 도시 생활의 과로와 긴장을 풀고 호연지기를 기르는데도 도움을 주는 「스포츠」이니 만큼 이것이 소란스럽고 무질서한 향락으로 타락되어서는 안 된다.
산은 인자가 좋아한다는 말도 있듯이 산악인들은 산을 외경할 줄 알아야하고, 모든 등산객들은 산을 사랑하고 소중히 여길 줄 알고 이를 더럽히지 말아야한다.
산을 오손 시키는 자는 산에 오를 자격이 없다는 자각이야말로 산의 정화를 위해 무엇보다도 아쉽고 중요하다.
산악연맹 등에 의한 산악정화 「캠페인」이 좀더 활발히, 그리고 지속적으로 전개되어 모든 등산객들이 「등산의 철학」을 몸에 익히도록 지도·계몽하는 동시에 주기적인 「쓰레기수거」 운동을 벌이는 일도 바람직하다.
이와 함께 각 국립 공원 사무소는 등산로 입구에서 입장료만 꼬박꼬박 받을 뿐 감시원 한 명 두지 않는 고식적인 단속 태도를 시급히 고쳐야하고, 또 지각없는 등산객들의 등산 공해 행위에 대해선 엄벌로 다스리는 문제도 이 기회에 신중히 검토해봐야 될 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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