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되던 해인 45년2월16일 일본「후꾸오까」형무소에서 29세의 젊은 나이로 옥사한 민족시인 윤동주의 미발표 유작시 12편이 그의 실제 윤일주씨(성균관대교수·건축학)에 의해 발굴, 공개되었다.
식민지 치하에서 동시 몇 편(그것도 가명으로)을 제외하곤 단 1편의 시도 공식적으로 발표되지 않았던 윤동주의 작품은 해방 후 유족과 친지에 의해 몇 편씩 발표되어 이제까지 그가 남긴 작품은 1백4편(시 71편 동시 28편 산문 5편)으로 알려져 왔으나 이번 12편이 공개됨으로써 그의 유작은 모두 1백16편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특히 이번에 발굴된 12편의 작품 윤동주의 시작의욕이 왕성했던「교오또」시절(42∼43년) 에 쓴 작품이 발굴되지 않는 한 마지막 발굴작품이 될 것이라는데 큰 뜻이 있다. 43년7월 사상범으로 체포되면서 윤동주는 상당량의 시작「노트」를 일제에 압수 당했는데 해방 후 이 작품을 찾으려는 노력이 전개되었으나 수포로 돌아가고 만 것이다.
윤동주씨가 보관하고 있는 윤동주의 작품들은 간도와 평양의 중학시절에 쓴『나의 습작기의 시 아닌 시』라는 제목의「노트」, 연희전문 시절에 쓴『창』이라는 제목의「노트」, 41년12월 연전 졸업 무렵 시집을 내기 위해 준비했던 자선 시고집『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19편), 그리고 몇 편의 낱장 원고로 되어 있다. 이번 윤일주씨가 발굴한 작품들은『나의 습작기의 시 아닌 시』와『창』의 후반 부분으로 한동안 분실되었던 것을 찾아낸 것이다.
이들 12편의 작품은『코스모스』『그 여자』『종달새』『이별』『공상』등 시가 5편, 『가을밤』『나무』『사과』『눈』『닭』『할아버지』『만돌이』등 동시가 7편인데 집필 년대가 36년부터 38년까지로 되어있어 용정 광명중학 고학년 때부터 연전 입학 무렵까지 씌어진 작품들임을 알 수 있다.
이번 발굴된 12편의 작품은『쉽게 씌어진 시』(42), 『서시』(4l), 『별 헤는 밤』(41)등 후기 시에 비하면 다소 덜 완숙하나 서정성은 오히려 후기시보다 더욱 두드러져 있다는 점이 특징. 또 이들 시가 씌어지기 1, 2년 앞서 시도했던 정형성의 시도가 깨끗이 가셔져 있다는 점도 쉽사리 눈에 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주목되는 것은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후략)>로 대변되는 윤동주 후기 시에 자주 등장하는「부끄러움의 미학」이 실상 38년에 씌어진『코스모스』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까지 발표된 윤동주의 시 가운데서「부끄러움」이란 어휘가 사용된 시는『쉽게 씌어진 시』(42)『사랑스런 추억』(42)『참회록』(42)『서시』(41)『별 헤는 밤』(41)『길』(41)『또 태초의 아침』(41)등으로 모두 40년대에 들어 씌어진 것들이나 이번 발굴된『코스모스』에도<(전략) 코스모스는/귀뚜리 울음에도 수줍어지고/코스모스 앞에선 나는/어렸을 적처럼 부끄러워지나니(후략)>라는 대목이 있어 윤동주가 이제까지 알려진 것보다는 몇 년 앞서「부끄러움의 미학」을 시도했음을 짐작케 하는 것이다.
윤동주의「부끄러움의 미학」을『자기혼자만 행복하게 살 수 없다는 아픈 자각의 표현』(김현)으로 본다면 그의 초기 서정시『코스모스』에 나타나고 있는「부끄러움의 미학」은 윤동주 시 세계의 또 다른 새로운 면모라고도 볼 수 있다.
어쨌든 이번 윤동주의 유작 시 12편의 발굴로 윤동주 시 발굴작업은 일단 마무리 지어졌다고 볼 수 있으며 그가 남긴 작품 1백16편으로 윤동주 문학의 보다 완벽한 정리가 가능하게 되었다. <정규웅 기자>정규웅>죽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