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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무기수의 옥중 결혼|면회·서신왕래 40여 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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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붉은 벽돌담과 쇠창살이 이 부부의 몸은 갈라놓을 수 있어도 이들의 영원한 마음의 결합은 어느 누구도 떼어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경기도안양교도소 무기수 341호 엄인회씨 (36·경기도화성군오산읍외삼미리)와 그의 반려자 김숙인씨(26·강원도홍천군남면노일리)의 결혼식 축사에 1백여 명의 동료재소자와 하객들은 손수건을 눈에 갔다댔다.
12일 상오11시 40여 평 남짓한 교도소강당에는 붉고 푸른 양초와 향불이 지펴졌고, 국방색 작업복차림의 신랑을 따라 흰 치마저고리에 붉은「카네이션」을 들고 머리에는 연꽃을 장식한 신부가 입장하자 장내에는 연민과 축복의 박수가 그칠 줄 몰랐다.
신부 김양이 무기수 엄씨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여름 이웃에 사는 엄씨의 이모 김낙순씨가 면회 다녀올 때마다 눈물을 흘리며 안타까워하자 7월 어느 날 위로 차 무심코 교도소에 면회 갔다 이들의 사랑은 싹텄던 것.
40여 회의 면회와 서신왕래를 하는 가운데 김양은 시들어 가는 영혼을 위해 「빛」의 역할을 할 것을 결심, 안양교도소 담당 김법혜 스님에게 결혼의 뜻을 밝혔다.
주위에서 무기수라 귀휴(외출)의 혜택이 없음을 강조, 이들의 결합이 비 실제적이라고 반대하자 김양은 아버지 김형수씨(46)를 찾아가 눈물로 호소, 마침내 결혼승낙을 받았다.
서울서대문 금화「아파트」에서 재봉사를 하며 할머니와 동생을 부양하고있는 김양은『16년 전 그이가 일시적 충동에서 저지른 죄 때문에 평생 영어의 몸이 되어야하는 고통을 나누어 지고싶었다』며 신랑이 선물한 금반지를 소중하게 쓰다듬었다.
홍안의 소년 때 감옥에 들어와 어느덧 장년이 된 엄씨는 16년의 재소기간 중 1급 양화공·2급「보일러」공 기능사자격증을 땄으며 지금은 목 공장에서 2백50여명의 동료를 감독하는 작업지도 반장의 1급 모범수. 결혼식에 앞서 영원한 불자 (불자)로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같이 보내겠다는 약속으로 이들 부부의 왼팔에 향불로 3개의 점을 찍어 놓는 연비 (연비)의 의식이 거행됐다.
결혼상징으로 단주(단주)를 선사한 주례는 『신랑·신부가 서로 보고플 땐 단주를 돌리며 언제나 곁에 있는 것처럼 생각하라』고 부탁하기도.
무기수의 첫날밤은 곱게 차려진 신방도 없었다.
기념촬영이 끝나고서도 계속 흐르는 신랑의 눈물을 흰 손수건으로 수줍게 닦아주는 것으로 신부는 첫날밤을 대신해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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