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오아시스」에서 만난 동포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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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우리 운수용역의 기지인「반다라바스」에서 수도「테헤란」으로 가는 도중 우리나라 운전기사들이 운전하는 대형「트럭」을 많이 만났다. 그 때마다 서로 힘있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는 것은 가슴이 뿌듯했다.
「자그로스」산지에 이르렀을 때엔 해가 지며 희한하게도 불타는 놀이 지고 있었다. 저 멀리 산 위에 쌓인 하얀 눈에 불빛이 비치니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다웠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신의 옷이라고 노래한 시인도 있었지만 그럴듯해 보인다. 아름다운「이란」의 놀은 고스란히 옛「페르샤」의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자그로스」산지의 융설수가 흘러내리는 개울가에서 쉬기로 했다. 우리 운전기사들은 이곳을「오아시스」라고 부르고 있는데 여기서 자취를 하므로 그대로 낙천식당과 휴식처가 된다. 「반다라바스」에서「테헤란」방향으로 달리는 수많은 차량의 80% 이상을 우리 운전기사가 차지하고 보니 어느새 10여대가 .이 「오아시스」에 모였다.
어떤 사람은 밥을 짓고 어떤 사람은 찌개를 끓이고 또 어떤 사람은 반찬을 만들고 있다. 그리고 모두들 갖고 다니는 김치단지에서 김치를 꺼내 그릇에 담는다. 이「오아시스」는 허허벌판이라 집 한 채 없으니 식탁이 있을 리 없다.
땅위에다 밥솥이며 김치그릇들을 놓고 자동차「헤들라이트」를 켜고 그 불빛 밑에서 여러 사람들이 함께 식사를 드는 것이다.
나는 교직생활에서 학생들과 답사를 하게 되면 식사 때엔 기도 대신에 노래를 먼저 부르곤 했기에 이국의 황야에서 모처럼 마련한 만찬이라 『아리랑』을 먼저 부르면 어떠냐고 의견을 내었더니 모두들 찬성했다. 그리하여 모두들 음식을 둥글게 둘러앉아 서로 손을 잡고 부르려고 하는데 어떤 분이『아리랑보다 애국가를 먼저 부르는 것이 어떨까요?』하고 제의했다. 누구하나 이의가 있을 리 없다. 노래가 끝날 무렵「헤들라이트」에 비친 모든 사람들의 얼굴을 보니 감격하여 눈물이 글썽거리고 있었다.
그믐밤이어서 진 감색의 하늘엔 별들만이 반짝이고 있는데 고국이야기를 하느라고 시간가는 줄도 몰랐다. 밤이 깊어서야 서로 자기 차의 운전대에 잠자리를 하기 시작했는데 하나둘 차내 전등이 꺼지는 것을 보고서야 나는 내가 타고 온 운전대에 누워 새우잠을 재촉했다.
우리나라 운전기사들이 사용하는「오아시스」가「반다라바스」에서「테헤란」까지 가는데 몇 군데가 있다. 자취를 하기 위하여 물이 있는 곳을 찾다 보니 자연히 알맞은 장소가 정해진 것이다.
하루 이틀도 아니며 앞으로 줄곧 이런「오아시스」에서 자주 쉬게 되는데 비바람이 불어도 자취할 수 있고 편히 쉴 수 있는 간이숙박시설이라도 우리 대사관을 통하여 마련하게 할 수는 없을까. 간단한 노천부엌이며 소풍용 식탁 따위를 마련하는데는 많은 돈이 드는 것이 아니므로 어려운 문제가 아닐 것 같았다.
운전기사들은 모두들 담요며 침대들을 갖고 있으니 비좁은 차안에서 다리를 오그리고 자는 것보다는 간이 숙박 소에서나마 다리를 쭉 뻗고 자면 얼마나 건강에도 좋으며 작업의 능률이 오를 것인가.
따라서 간단한 변소라도 만들어 쓴다면 이 나라사람들이 우리나라 사람을 볼 때 더 깨끗한 살림을 탄다고 볼 것이다.
더구나 우리 운전기사들이 잘 쉬는「오아시스」의 길가에는 표식을 해 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우리 고전에서 딴 이름으로서「춘향이 마을」이라든지「논개 마을」이라든지 하는 예스러운 이름을 붙이면 어떨까? 그리고 이 나라의 수도「테헤란」과 남쪽 항구도시「반다라바스」를 서울과 부산으로 생각하여「서울 집」이니「대전 집」이니「대구」집이니 하는 마을의 이름을 한글과「이란」말의 두 나라 말로 쓴 간판을 붙인다면 향수를 달래는데도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 같이 간이숙박 소를 만들어 여기에다 한국의 신문·잡지·단행본을 비롯하여 아름다운 「포스터」따위를 걸어 두면 큰 위안이 될 것이다.
이 여행기의 독자께서라도 먼저 몇 푼씩 성의껏 거두어 이 낯선「이란」에서 외화획득에 여념이 없는 우리의 운전기사들이 쉬는 산지나 사막에 시범적으로 안식처를 마련해 주었으면 하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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