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영의 명작 속 사회학] (33) 흥부전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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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홍주연

지난 2일은 음력으로 3월 3일, 삼짇날이었다. 우리 민속에 의하면 강남 갔던 제비들은 이날 일제히 돌아온다. 지금도 우체국의 상징일 정도로 제비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친숙한 새다. 요새는 환경오염, 농약 사용 때문에 제비를 보기 힘들다. 그러나 처마가 있는 옛집에 살던 시절, 제비는 마치 개나 고양이처럼 사람들과 한 집에 어울려 사는 존재였다. 아마 고전 소설 『흥부전』 덕분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더욱 제비에게 호감이 있을 것이다.

가난한 흥부는 부러진 제비 다리를 고쳐준다. 제비는 다음해 봄에 박씨를 물고 돌아와 흥부 앞에 떨어뜨린다. 박씨에는 ‘보은 박’이라고 새겨져 있었다. 이 박씨를 심어 주렁주렁 열린 박을 타자, 그 안에서 쌀과 돈과 보물이 쏟아져 나왔다. 목수들이 연장을 들고 우르르 나와서 대궐 같은 집도 뚝딱 지어 주었다. 흥부는 제비 덕분에 큰 부자가 되었다. 제비는 영국 작가인 오스카 와일드가 쓴 동화 『행복한 왕자』에도 등장한다. 가난한 사람들을 보고 가슴 아파한 왕자는 제비에게 자신의 동상에 장식된 보석과 금박을 뜯어 병들고 굶주린 사람들에게 물어다 주라고 시킨다. 이 동화 속의 제비도 흥부전의 제비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 즉, 가난한 사람을 부자로 바꿔 주는 일을 하는 것이다. 궁금하지 않은가? 왜 하필 가난한 사람을 부자로 만들어주는 새가 제비여야만 할까? 제비에 어떤 상징성이 있기에 그럴까?

제비는 여름 철새다. 봄에 우리나라에 날아와 처마 밑에 둥지를 만들어 알을 낳고 번식한 후, 날씨가 추워지면 남쪽으로 날아간다. 대개 음력 9월 9일 중양절에 제비들이 강남으로 간다고 한다. 이때 강남이란 중국 장강(양쯔강) 남쪽을 말하지만, 우리나라에 온 제비들은 실제로는 중국 강남이 아니라 대만·필리핀·태국·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지역으로 날아가 겨울을 보낸다. 『행복한 왕자』에 등장하는 유럽의 제비들도 마찬가지다. 겨울이면 남쪽으로 날아갔다가 이듬해 봄에 다시 돌아온다. 그래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제비를 겨울을 몰아내고 봄을 몰고 오는 신령스런 존재로 여겼다. 제비에게는 춥고 어두운 계절을 따뜻하고 밝은 계절로 바꿔주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제비에겐 또 다른 것도 바꿔 줄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서안해양성 기후인 유럽의 경우 대개 추우면서도 으슬으슬 습기 찬 겨울을 보내게 된다. 그런데 제비가 날아오면 갑자기 기분 좋게 건조한 봄 날씨가 시작된다. 그래서 서구인들은 습기 찬 날씨를 건조하게 바꿔주는 제비가 물과도 관련 있는 새라고 생각했다. 제비가 겨울이면 물 속에서 겨울잠을 자다가 봄이 되면 수면 위로 날아오른다고 믿었다. 겨울이 춥고 건조한 우리나라의 경우 제비의 물밑 겨울잠과 관련한 이야기는 없다. 하지만 우리 역시 제비를 물과 관련된 새로 생각했다. 그 예로 ‘제비가 낮게 날면 비가 온다’는 속담을 들 수 있다. 옛날 사람들은 제비가 낮게 날면서 비를 불러 온다고 여겼다. 실제로는 비가 오기 직전 습기 때문에 날개가 무거워져 낮게 나는 벌레들을 잡아먹기 위해 제비가 낮게 나는 것이지만. 여하튼 서양과 동양 사람들 모두 제비를 물과 대기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둘을 바꿀 수 있는 능력도 가진 존재로 생각했다.

지금까지 이야기를 정리해 보자. 옛날 사람들은 제비에게 추움과 따뜻함, 어두움과 밝음, 물과 대기, 두 가지 서로 다른 영역을 마음대로 날아서 오가며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즉, 제비란 새를 극과 극의 서로 다른 상태를 연결해 주는 중개자로 여겼다. 이런 상징성이 있기에 제비는 극도의 가난한 상태를 부유한 상태로 갑자기 바꿔 놓는 역할도 당연히 할 수 있다. 그래서 『흥부전』과 『행복한 왕자』에서 가난한 등장인물을 부유하게 바꿔 놓는 존재는 다른 새가 아닌, 바로 제비여야만 했다.

박신영
『백마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 저자, 역사에세이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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